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의 아시아순방 일정은 일본(2∼4일), 중국(4∼5일), 한국(5∼7일) 순서로 돼 있다. 대개 외교가에서는 “동맹의 질적 수준, 중요도에 따라 순서를 정하는 게 보통”이라고 평가한다. 이번 바이든 부통령의 방문국 순서에서도 이 같은 외교학적 의미가 적용될까.

미국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고 딱 부러지게 부인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코너 스톤(주춧돌)’으로 표현되는 미·일 동맹이 우선이냐, ‘린치 핀(핵심축)’으로 평가해온 한·미 동맹이 우선이냐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미국 외교부 관리들은 “포인트가 다르고 똑같이 중요하다”고 말해왔지만 사실 의전상 답변 성격이 강하다. 동북아에서의 안보·경제동맹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미국에 일본의 전략적 가치는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라는 점에서다.

그러나 이번 바이든 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는 이를 넘어선 고차원의 전략적 함의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동북아 정세가 가파르게 변화하는 상황이 반영된 결과다. 바이든 부통령은 당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심전략인 ‘피벗 투 아시아(Pivot to Asia·아시아로의 외교중심축 이동)’ 정책을 들고 아시아를 순방할 예정이었다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라는 돌출변수 때문에 동북아 3국 간의 갈등조정을 제1의 과제로 떠안게 됐다. 발걸음이 무거운 이유다.

이런 배경에서 보면 바이든 부통령은 ▲일본과 우선 공동대처 방안을 마련한 뒤 ▲중국에 가서 방공식별구역(ADIZ) 문제를 담판 짓고 ▲한국에 와서 조정결과를 설득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짰을 개연성이 높다. 중국이 직접적으로 겨냥한 일본과 함께 CADIZ 불인정 및 동북아정세 공동대처 방향을 확고히 함으로써 중국을 압박할 동력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일본이 첫 방문지로 선택된 배경이다. 중국과의 담판이 필요한 배경은 발등의 불인 방공식별구역을 넘어서 국제질서에 대한 중국의 근본적인 문제제기 성격이 짙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해야 할 의무는 하되, 실리적 국익으로 취해야 할 것은 취하겠다는 방식으로 질서의 틀 변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의 도전장에 미국은 대결과 타협의 양면전략을 구사하겠다는 계산이다. 한국이 마지막 순방지가 된 이유는 CADIZ의 기본 대립구도가 중·일 간에 형성된 만큼 상대적으로 후순위로 제쳐놓고도 해결가능한 과제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바이든 부통령의 아시아 순방에는 미국의 재균형정책, 태평양에서의 역할, 북핵문제 해결 등 중층적인 과제 달성도 본질적으로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김상협 기자 jupit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