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원 국무총리가 25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일제의 침략에 대한 역사인식을 묻는 질문에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문제”라는 등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해 비판을 받고 있다.야당 의원들은 정 총리의 답변태도를 문제 삼아 집단 퇴장하는 등 국회가 한때 파행됐다.

이날 도종환 민주당 의원은 정 총리를 상대로 교학사 교과서가 일본의 ‘침략’을 ‘진출’로 기술한 점을 놓고 “‘진출’이 적합하다고 보느냐, 아니면 ‘침탈’이 적합하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또 ‘일본은 한국 병합을 실현하기 위해 의병들을 소탕해야 했다’는 문구를 가지고 “소탕이라는 표현이 적절한가”라고도 따져 물었다.

이에 정 총리는 “역사학자들이 판단할 문제” 등의 말로 즉답을 회피했고, 야당 의원들은 “친일 총리 물러나라”고 거세게 항의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이병석 부의장에게 정회를 요구했으나 거부당하자 오전 11시 10분쯤 끝내 집단 퇴장했다.

이어 박수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정 총리의 애매모호한 답변 태도에 대해 “무답변, 무소신, 무책임으로 일관한 ‘3무(無) 총리’”라고 맹비난했다.

정 총리는 오후 대정부질문이 재개되자 “질문 원고를 미리 받지 못해 즉석에서 확인이 안된 상황이라 답변을 못 드렸다”면서 “충실한 답변을 못드린 것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급히 상황을 수습했다. 정 총리는 이렇게 유감을 표명한 직후 최민희 민주당 의원의 “(일제가) 침략한 것인가, 진출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침략이다”고 답했고, “(일제가) 학살한 것인가, 소탕한 것인가”라는 질문에도 “학살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 총리는 행정부의 수장으로서 정치 현안에 대해 가능한 한 신중을 기하기 위해 원론적인 답변만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직(職)’의 부담감을 감안하더라도 정 총리가 일제의 침략을 ‘침략’이라고 자신있게 답변할 수 있을 정도의 ‘소신’조차 국민 앞에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아 올해 대정부질문 마지막에 섰던 정 총리의 모습이 못내 아쉬웠다.

현일훈 정치부 기자 on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