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을 옹호하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박창신 원로신부의 22일 발언을 염두에 두고 “묵과하지 않겠다”며 작심하고 비판에 나선 것은 국가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특히 “국민을 위해서 잘못된 그 어떤 것들에도 결코 불복하거나 용인하지 않겠다”고 강조한 대목에서는 비장함도 엿보인다.

대선불복 미사를 주도하는 행위도 국가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문제가 심각하지만 사회지도층 인사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인정하지 않거나 국민의 생명을 해친 북한 무력도발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발언을 묵과할 경우 국가원수로서 대한민국 수호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국내 정치권이나 각계각층의 이념 갈등 사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해왔으나 이날 한 달여 만에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달랐다. 단순한 입장 대립이나 갈등 정도로 치부될 수준을 넘어섰고, 이를 방치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넘어간다면 과거 북한의 천안함 폭침 도발 때 난무했던 ‘한국의 격침 의혹’과 같은 유언비어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가능성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은 일각의 움직임에 대해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는 행동들” “국민들의 신뢰를 저하시키고 분열을 야기하는 일들”로 규정해 이 같은 인식을 내비쳤다.

정홍원 국무총리 역시 사태 발생 사흘 뒤인 이날 오전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박 원로신부의 발언을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서 정부 전체가 이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드러냈다. 특히 박 원로신부에 대한 정 총리의 비판 가운데 주목되는 지점은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적에 동조하는 행위”라는 진단이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직접 지시를 내려 한국 내 갈등 조장행위를 부추기는 ‘대남 선전전’을 강화한 데 대해 정부는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며 강경대응 입장을 피력한 상황이다.

이처럼 박 대통령과 정 총리 등 1·2인자가 일제히 나서 박 원로신부로 대표되는 극단적인 시각에 단호한 반응을 보인 데는 국민의 정서가 호응하고 있다는 자신감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들 주장에 대해 야당인 민주당이나 안철수 의원 세력조차도 과격한 주장으로 평가하며 선을 그으면서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연평도 포격 도발로 국민의 생명이 희생된 점은 안보논리상 정당성이 위협받을 수 없는 사실이라는 판단도 섰다. 박 대통령은 “북한은 이제 청와대를 불바다로 만들겠다고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우리의 현실은 죽음으로 나라를 지킨 장병들의 사기를 꺾고 그 희생을 헛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김상협·오남석 기자 jupit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