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박길연 북한 외무성 부상이 사실상 미국을 상대로 ‘핵군축’ 협상을 요구했지만 미국 정부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은 가운데 북한의 발언을 무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박 부상의 발언에 대해서 미국이 반응을 보이는 것 자체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만큼 앞으로 이같은 북한의 발언이 계속되더라도 논평의 가치가 없다는 입장을 펼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미 국무부는 박 부상의 유엔총회 발언 이후 아무런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연방정부 폐쇄(셧다운)로 업무인력이 줄어든 기계적인 이유도 있지만 국무부에서 비상근무를 하는 핵심인력들은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 워싱턴 DC의 외교소식통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면서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도 먼저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의 핵군축 협상 요구 발언을 기존의 군사적 도발과 외교적 대화를 반복했던 과거의 행보가 먹혀들지 않자 자신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수순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이같은 발언의 배경에는 미국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도 배제하지는 못한다. 벤 로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은 지난 9월 23일 유엔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으로 가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수행해 대통령 전용기에서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실제로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획득했고 2006년 초 실험도 했다. 그러나 이란은 핵무기를 아직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발언 직후 패트릭 벤트렐 미 국가안보회의 부대변인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 입장에는 전혀 변화가 없으며 앞으로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계획이 없다”고 강조하면서 해명에 나섰다.

워싱턴 = 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