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길연 북한 외무성 부상이 1일(한국시간 2일 오전)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하면서 ‘핵군축’ 협상 조속 개시를 제안했다.

중국·러시아와 연대한 6자회담 조기 재개 압박이 한·미의 북한의 ‘비핵화 사전조치 필요’ 원칙에 밀려 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이번에는 ‘핵군축’ 회담 제안을 통해 6자회담 국면전환을 시도하려는 노림수로 풀이된다. ‘핵보유국 지위 인정→북·미 간 핵군축 협상→평화협정 등을 통한 안전보장 약속’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전형적 논리로, 향후 대화·평화공세를 위한 포석 마련 차원으로 보인다.

박 부상은 이날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의 대(對)조선 적대시 정책을 비난하면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청산하는 것이며, 핵군축 협상을 조속히 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부상은 지난 9월 26일 유엔본부에서 열린 비동맹운동(NAM) 회원국들 간 유엔고위급회의에서도 “전제조건 없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조선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지향하는 것은 우리의 변함없는 입장”이라면서 “핵군축을 실현하는 데 있어 세계 최초의 핵무기 사용국이며 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신선호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올 6월 기자회견을 자청한 자리에서 “미국의 적대적 위협이 계속되는 한 핵포기는 불가하다”면서 북·미 대화를 통한 평화협정 논의 및 미·중·러를 포괄한 ‘핵군축’ 회담 등을 제안한 것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 동안 비동맹 입장에서 기존 핵보유국의 핵무기 철폐가 선행돼야 하며, 국제협정 체결과 비핵국가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 약속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펼쳐왔고, 이 같은 맥락에서 북·미 간 핵군축 협상과 평화협정 체결 등을 강력 주장해왔다.

앞서 2011년 3월 제네바 군축회의에서도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고 세계적인 핵군축과 종국적인 핵무기 철폐를 추동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고, 2009년 1월 외무성 성명을 통해 북·미 간 핵군축 협상을 주장하는가 하면 같은 해 9월 유엔총회에서도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동안 핵무기의 관리·사용·전파(확산) 방지와 핵군축 문제에서 책임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신보영 기자 boyoung2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