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틀에 박힌 ‘위장 평화공세’에 또다시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박길연 북한 외무성 부상이 유엔총회라는 국제사회를 무대로 ‘핵 군축 회담’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나섰다.

과거와 다른 점은 동북아 정세가 전환기를 맞고 있고, 이란과 미국의 핵협상 및 시리아 사태와 맞물린 국제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존 주장의 되풀이라는 식상한 레퍼토리를 들고 나오서면까지 북한이 노리는 바는 결국 모든 기회를 이용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뒤 미국과 담판 짓겠다는 전략으로 압축된다.

더구나 최근 미국 고위관리의 입을 통해 취중진담 비슷하게 ‘북한 핵보유국 인정 불가피론’이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상황도 북한으로서는 미국내 여론분열과 한·미 간 공조분열을 부추길 수 있는 호기로 활용할 수 있는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박 부상이 1일(한국시간 2일 오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 기조연설을 통해 밝힌 요구사항은 ▲한·미가 한반도 긴장조성의 책임자 ▲대북 적대시 정책 중단 요구 ▲ 유엔의 대북제재 결의안의 부당성 ▲핵군축 협상의 조속한 개시 중요 ▲ 핵무기 사용금지를 규정한 구속력있는 국제법적 문서작성을 통한 합의도출 등으로 요약된다. 하나같이 북한이 한반도 평화해결을 위한 항구적이고 본질적인 방안으로 주장해왔던 단골 메뉴들이다.

북한이 최근 정세의 변화를 배경으로 여러 측면에서 상징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한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우선 미국 뉴욕을 무대로, 국제사회를 향해 ‘제발 대화에 응하라’는 요구다. 최근 독일, 중국을 활발하게 오가며 미국 인사들과 반관반민 형태의 각종 세미나에 참석해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설득 공세를 펴는 것과 맥이 닿아 있다. 미국이 최근 이란과의 핵 협상에 큰 진전을 이루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머릿속에서 북한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북한의 발걸음을 재촉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사실 미국은 이미 핵무기 개발의 상당한 단계에 와 있는 북한보다 핵무기 개발 초입단계에 있는 이란부터 주저앉히겠다는 전략을 구사하는 모습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전격적으로 전화회담을 갖고 핵문제를 논의한 바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북한의 핵능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입장에서 그토록 간절하게 희망해온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 카드를 관철시킬 수 있다는 오판을 불러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번 주장도 대답없는 메아리로 그칠 공산이 크다.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의 본질적인 변화가 없는 한 대화공세에 속지 않겠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김상협 기자 jupit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