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수사는 검찰로서도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특히 안보 관련 사건은 ‘공안정국 조성’이라는 야당의 거센 반발을 불러온다는 점에서 더욱 신중을 기한다. 검찰은 그러나 혐의를 입증할 자신이 있을 때는 언제든 제도권 정치인을 향해서도 칼을 빼들어 왔다.

한국 정치사에서 제도권 정치인이 연루된 최대 공안사건은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이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의 ‘서경원 밀입북’ 사건이다. 당시 평화민주당 소속이던 서경원 전 의원은 1988년 8월 19일 밀입북해 21일까지 머물렀다. 서 전 의원은 유럽여행 중 성낙영 목사를 통해 접촉한 북한인사 정모 씨의 주선으로 체코를 경유해 북한에 들어갔다. 그는 북한 체류 중 허담이 배석한 가운데 당시 김일성 주석과 면담하고, 통일문제 등에 관해 회담을 했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검찰은 이듬해인 1989년 6월 28일 서 전 의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당시 이 사건을 전형적인 ‘국회간첩단’ 사건으로 규정하고, 서 전 의원이 활동해온 정치권과 재야단체에 초점을 맞춰 수사를 확대했다. 특히 검찰은 서 전 의원이 김일성으로부터 받은 5만 달러 중 1만 달러를 당시 김대중 평민당 총재에게 제공했다고 발표하고, 김 총재를 서울지검으로 소환 조사하면서 정국을 소용돌이로 몰아넣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 이길재 평민당 대외협력위원장, 방양균 비서관 등 야당 인사 9명이 국가보안법상 불고지죄 등의 혐의로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됐다. 서 전 의원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김 실장은 검찰총장 시절 ‘문익환 목사 방북’ 사건을 계기로 1989년 4월 공안관계기관을 망라한 공안합동수사부를 설치해 불과 두 달 반 동안 300여 명의 시국사범을 구속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정권안보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그는 이듬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됐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주사파 출신들이 진보정당을 통해 정치권으로 들어오면서 제도권 인사들은 공안 검찰의 상시적인 감시 대상이 됐다. 2006년 10월 적발된 ‘일심회’ 사건은 386 출신 정계 인사들이 연루된 대표적인 간첩 사건으로 꼽힌다. 이 사건으로 최기영 민주노동당 전 사무부총장과 이정훈 전 중앙위원 등이 북한에 정보를 제공한 혐의가 확정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2011년 8월 ‘왕재산 사건’을 수사하면서도 간첩 혐의를 적용해 제도권 정치인을 구속한 바 있다. 검찰은 당시 임채정 전 국회의장의 정무비서관으로 일했던 야당 인사를 북한 노동당 225국의 지령을 받고 국내에서 간첩활동을 벌인 지하당 조직 ‘왕재산’의 2인자라고 발표했다.

박영출 기자 ev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