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7월 25일 울산 울주군 삼남면 상천마을에서 삼성SDI 직원들과 대학생들이 벽화그리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김호웅 기자 diverkim@munhwa.com

지난 7월 25일 울산 지역은 35도가 넘어 폭염경보가 내려진 상태였다. 오전 10시였지만 내리쬐는 햇볕에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울산역에서 차를 갈아타고 15분 남짓, 삼성SDI와 1사1촌 결연을 맺고 있는 울산 울주군 삼남면 상천마을로 이동했다. 삼성SDI는 이 마을에 벽화그리기 봉사활동에 나선 터였다. 이런 날씨에도 과연 야외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숨이 턱턱 막혀 왔다.

그러나 마을에 들어서자 멀리 완전무장(?)한 젊은이들이 롤러 질을 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밀짚모자에 선글라스, 팔토시는 물론 사막을 횡단하는 사파리 여행객처럼 얼굴을 온통 천으로 두르고 있었다.

삼성SDI 직원들인가 싶었지만 인근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란다. 알고 보니 이번 벽화그리기 봉사활동은 삼성SDI가 후원해 인근에 8개 대학교 학생들과 함께 마을에서 7월 22일부터 26일까지 진행되는 1주간의 장기 프로젝트였던 것.

학생들은 봉사활동 기간에 마을회관에서 숙식하며 밤낮으로 벽화를 완성하고 있었다. 유흥진 삼성SDI 과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학생들을 모집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놀랐다”면서 “오히려 여학생들이 더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 삼성SDI 직원들과 대학생들은 무더운 날씨에도 웃고 떠들며 한창 오전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칙칙한 회색 담벼락에 이들의 붓이 스칠 때마다 소나무가 자라고 학이 날았다. 날개를 펼친 학을 바라보며 호랑이는 점잖게 담뱃대를 물었고 그려진 사물놀이 춤판에서는 꽹과리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냥 풋내기들의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전공자들의 작품이었다. 울산대 시각디자인학과에 재학 중인 윤이슬(여·22) 씨가 도안을 그리면 나머지 직원들과 학생들이 물감을 섞고 칠을 했다. 롤러로 벽면에 색을 채웠고, 다음에는 두꺼운 붓으로, 다시 얇은 색펜으로 정밀함을 더해 가는 순이었다.

윤 씨는 “농촌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도안을 하고 있다”면서 “햇볕을 오래 쫴서 비록 검게 탔지만 즐거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씨는 “마을 어른들이 상천마을로 시집오라고 한다”며 수줍게 웃었다.

삼성SDI 직원들의 상천마을 벽화그리기 봉사활동은 올해가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7월에도 벽화그리기를 진행했다. 그러나 때마침 시작된 장마 때문에 결실을 보지 못했다. 그 뒤 직원들은 완성하지 못한 벽화를 마무리하고, 벽화가 그려지지 않은 다른 곳에도 작품을 선보이기로 하고 올해 7월에 다시 마을을 찾기로 결정했다. 이번에는 자원봉사를 원하는 학생들까지 4박5일에 걸쳐 대대적인 벽화그리기에 나섰다.

벽화가 마무리되면서 마을은 환한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지저분하게 담벼락에 놓여 있던 농기구들은 정돈됐다. 관광객들이 담벼락에서 기념촬영을 하는가 하면, 마을 사람들의 표정도 예전보다 한층 밝아졌다고 한다. 마을 구석구석을 살펴보니 마침 담벼락에 페인트로 적어 놓은 시구가 눈에 들어왔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로 시작되는 도종환 시인의 시였다. 담장 아래에는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배웅하듯 몸을 흔들고 있었다.

신상열(56) 마을 총무는 “화가 나도 꽃을 보면 기분이 나아지듯 벽화로 인해 마을 분위기가 한결 좋아졌다”면서 “아무런 보상이 없는데도 밝게 웃으며 일하는 직원들과 학생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울주 =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