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의혹 파문’과 관련해 감춰졌던 진실과 증언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뿐 아니라 청와대와 미국 워싱턴DC 한국문화원, 주미 한국대사관 등의 부적절한 대응 실상도 구체화되고 있다. 결과론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관계 기관들이 피해 여성의 입장에서 좀 더 기민하게, 좀 더 체계적으로 대처했다면 사건의 파장이 이렇게까지 커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질책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선 지난 7일 밤(현지시간) W워싱턴 DC 호텔에서의 1차 성추행 직후 피해를 입은 한국문화원 여성 인턴직원 A 씨가 피해 사실을 보고했는데, 문화원측이 이를 묵살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화원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것으로 추정되는 한 제보자는 14일 미주 한인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 ‘미시 USA’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A 씨가 지난 7일 밤 문화원 소속 한 서기관에게 성추행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이 제보자는 “서기관님께서는 중차대한 시기에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덮으라는 뉘앙스로 말씀했다”고 밝혔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A 씨가 경찰 신고를 결심하게 만든 8일 오전의 2차 성추행은 막을 수 있었는데, 문화원측이 제대로 대응하지 않아 기회를 놓쳤다는 얘기가 된다.

8일 오전 5∼6시 무렵으로 추정되는 2차 성추행 이후 최병구 한국문화원장이 A 씨를 만나 약 10분 동안 피해사실을 전해들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밝혀졌다. 10분이라면 1·2차 성추행 전모를 전해듣는 데 충분한 시간이다. 하지만 이후 A 씨가 문화원 동료 직원 B 씨의 도움을 받아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는 점에서, 최 원장도 사건 무마를 시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후 최 원장이 전광삼 청와대 홍보수석실 선임행정관에게 A 씨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보고한 뒤부터는 청와대의 부실하고 부적절한 대응이 뒤따랐다. 전 행정관은 최 원장과 함께 A 씨를 접촉하기 위해 워싱턴 DC 페어팩스 호텔에 있던 A 씨 방으로 찾아갔었고, 윤 전 대변인 역시 이와 별도로 A 씨와의 접촉을 시도했다.(문화일보 5월 13일자 1·3면 참조) 전 행정관은 이에 대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파악하기 위해 A 씨를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 전 대변인도 A 씨를 만나지 못한 채 미국 경찰을 피해 호텔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윤 전 대변인이 7일 밤∼8일 새벽 사이 술에 취해 호텔을 돌아다녔고, 5·6일 밤에도 술 마시는 장면이 여러 차례 목격됐다는 점을 들어 애당초 청와대가 윤 전 대변인의 잘못된 처신을 바로잡았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전 대변인이 성추행 의혹으로 미국 경찰에 쫓기고 있다는 사실이 보고된 뒤에도 이남기 홍보수석은 대통령 보고 타이밍을 계속 놓치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8일 오후 3시 5분 워싱턴 DC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한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최영진 주미대사가 미 국무부로부터 전해들은 경고성 메시지를 전하지 않았다면 이 수석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게 더 늦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