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웃으며 당사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서울 새누리당 당사 집무실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는 ‘정치공학’이다. 이는 박 당선인이 향후 5년간 국정운영의 프레임을 짜는 데 큰 이정표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 당선인의 정치공학에 대한 거부감은 역사가 깊다. 박 당선인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를 이끌던 지난 2004년. 정치에 해박하다고 자신하던 박세일 당시 여의도연구소장은 박 당선인이 ‘정치공학’이라는 단어를 뿌리째 부정하고 있음을 알고 깜짝 놀랐다. 박 당선인은 당시 “언론이나 정치인들이 왜 정치공학적 관점으로 정치현안을 바라보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가장 논란을 빚었던 대표적인 사례가 계보정치 여부였다. 박 당선인은 “계보정치를 안 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언론과 정치인들은 믿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결국 계보정치를 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 아니면 계보정치를 해야 한다는 간언뿐이었다. 박 당선인은 당시 기자와 만나 “계보정치를 안 하겠다고 하니까, 왜 안 하느냐고 한다”면서 “이 사람은 내 사람, 저 사람은 누구 사람이라는 식의 정치가 바람직한가”라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계보정치를 주장하던 사람들이 전형적인 정치공학적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것으로 이해했다. 박 당선인은 “정치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말하고, 욕먹는 게 낫다”면서 “계보정치를 안 하겠다니, 저를 변호해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이 뿌리깊게 정치공학을 거부하는 것은 이공계(전자공학과) 출신이 가지는 실용주의적 관점과 연관돼 있다. 그는 공학이라는 말을 정치에 갖다 붙이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박 당선인은 정치공학을 ‘정치적 계산’이라고 보고 있고, 저급한 정치문화라고 평가하고 있다.

박 당선인은 그로부터 8년이 지난 후에도 똑같은 사고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20일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제가 어려웠을 때 정치공학적으로 해라, 전략적으로 하면 선거에서 ‘몇 % 이긴다’ 등의 얘기가 있었지만 듣지 않았다”면서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인간적 애정이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당선인은 과거 정치공학 거부와 관련, “당이 장외투쟁할 때 외롭게 등원론을 주장했고, 국정감사를 할 때도 어떻게든 대안을 제시해보려고 노력했다”면서 “편하게 정치하려면 당 지도부 결정에 따르면 그만이었지만 그런 식으로 정치를 하려면 뭐 하러 정치를 하겠느냐”고 말했다. 세종시 건설을 끝까지 주장하고, 2006년 지방선거 직전 피습 후 대전을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대전을 찾았던 사례 등이 마찬가지 맥락이다.

정치공학의 거부는 박 당선인이 내세우는 ‘원칙의 리더십’을 이끌고 있는 토대이다. 결국 정치공학을 거부하는 박 당선인의 사고는 향후 5년간 ‘기성 관념에 젖어서는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박근혜식 리더십과 국정운영의 기본 철학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정치공학의 거부가 박 당선인의 외골수 고집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박 당선인은 자신만의 뚜렷한 소신을 갖고 있는 정치인이다. 정치인으로서 정치적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다. 정치공학 거부의 긍정적 효과를 살리고, 부정적 단점을 살리는 게 박 당선인의 국정운영 성공 열쇠가 될 전망이다.

천영식 기자 kka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