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당초 27일 캠프 해단식에 참석해 대선에 임하는 방침을 밝힐 계획이었지만 연기된 상태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캠프 선대위에 합류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리됐지만, 어떻게 도울지에 대한 시기와 방법이 아직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분위기다.

문 후보를 도와줘도 도와주지 않아도, 문 후보가 대선에 승리해도 패배해도 어느 경우든 얻을 것은 많지 않고 잃을 게 더 많다는 판단도 있다. 또 어떤 경우든 안 전 후보는 주연 문 후보를 빛나게 해주는 조연일 수밖에 없다. 결국 승리의 큰 과실은 문 후보가 가져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야권의 선거 승리 이후 재편 과정 등에서 주도권은 문 후보가 쥐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선거 기간은 물론 선거 이후에도 안 전 후보가 주역이 될 가능성은 적다.

전문가들은 “문 후보 측이 선거 때는 안 전 후보를 적극적으로 배려하지만 선거 이후에도 이러한 태도가 유지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안 전 후보가 정치를 계속할 경우 문재인정부가 만들어진다고 해도 ‘여권 비주류’의 역할을 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우선 안 전 후보가 선거운동을 도운 뒤 질 경우 안 전 후보가 공동책임론에 휩싸일 수 있다. 공동선거대책위원장 등 주요 직책을 맡을 경우 향후 패배를 극복할 인물이라기보다는 패배에 책임을 져야 될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야권의 ‘승리의 보증수표’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야권 재편 과정에서 안 전 후보가 대안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도 있다. 안 전 후보가 선거운동을 도운 뒤 이길 경우에도 조연 안 후보보다는 주연 문 후보에게 더 스포트라이트가 갈 수 있다. “어차피 이기게 돼 있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안 전 후보가 선거를 돕지 않을 경우도 부정적인 평가가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일단 호남 유권자를 비롯한 야권 성향 문 후보 지지자들이 안 전 후보로부터 등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선거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안 전 후보는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문 후보 측에서도 “선거운동도 돕지 않은 안 전 후보를 더 이상 배려할 필요가 없다”는 기류가 강하게 제기될 수 있고, 야권 지지자들도 “안 전 후보가 한 것이 뭐냐”고 동조하고 나올 수 있다.

안 전 후보가 선거운동에 참여하지 않고 문 후보가 선거에서 진다면 “안철수 때문에 선거를 졌다”는 말이 나올 수 있다. 야권 지지자들이 안 전 후보에게 강한 배신감을 느끼고 비판 여론이 형성될 수 있는 시나리오다. 실제 안 전 후보 측 관계자도 “최소한 안 전 후보로 인해 선거에 졌다는 말은 안 나오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안 전 후보의 이러한 처지가 5년 전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비슷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두 사람 모두 내부 경쟁 과정에서 상당한 감정을 안고 있고 선거운동에 참여해 별로 얻을 것이 없지만 ‘다음’을 위해서 선거운동에는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2007년 당시 공식선거운동 돌입 이후 1주일 정도 지난 다음에 이명박 대통령과는 별도의 동선으로 선거 지원에 나서면서 소극적 선거 지원 방식을 택했다.

김병채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