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이 일제히 증세(增稅)를 거론하고 나섰다. 경쟁적으로 내놓는 복지공약들이 재원조달 방법론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수용한 것으로, 다소나마 현실을 직시했다는 점에서 다행한 일이다.

박근혜 후보 캠프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16일 부가가치세 인상을 제기했다. 현 부가세율 10%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8%에 못미치는 만큼 올릴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세제 개혁을 통해 현재의 조세부담률 19%를 과거 최고 수준인 21%로 되돌릴 경우 약 30조 원의 세수 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도 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부자 증세’를 공식화한 상태다. 법인세와 고소득층 소득세가 타깃이다. 소득세는 최고세율 38% 적용 하한선을 연소득 3억 원에서 1억5000만 원으로 낮추는 한편 법인세 역시 감세 이전 수준인 25%로 원상 복귀시키는 안을 다듬고 있다. 안철수 후보는 국민 모두가 세금을 내고, 또 조금씩 부담을 늘리는 ‘보편적 증세’ 주장을 펴고 있다.

그동안 대선 후보들은 무상복지 공약을 남발하면서도 국민 부담을 늘리지 않겠다는 식의 입장을 취해왔다. 비과세·감면의 재정비, 세출 구조조정 등의 주장이 고작이었다. 기획재정부 추정으로 연간 54조 원, 한국경제연구원 조사로는 54조∼128조 원이라는 추가 예산 소요를 감안한다면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방안이다. 이런 점에서 증세 필요성을 정면 제기한 것은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찬성할 수 없다.

우선, 과도한 복지 포퓰리즘에 소요되는 비용 조달을 위해 급격한 증세를 시도한다면 조세 저항과 탈세 유혹은 물론 복지의존증 심화 등 심각한 후유증을 낳게 된다. 또 최악의 시점이다. 세계적 경제위기가 한국경제의 저성장 기조로 옮겨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증세는 경제활력과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려 불황을 더 악화시킨다. 증세 효과 자체를 상쇄해버릴 수도 있다.

게다가 증세 방법론조차 허점 투성이다. 간편한 방법으로 부가세 인상이 꼽히지만 역진성(逆進性)이 크다는게 난점이다. 가난한 계층에 상대적으로 더 큰 부담이 돌아간다. 소득세나 법인세도 다를 게 없다. 현재 상위 20%가 이미 전체 근로소득세의 95%를 차지하는 실정이다. 최고세율을 높여봐야 실질 효과는 미미하다. 법인세의 경우, 세율 인하가 글로벌 추세다.

증세에 앞서 국민 개세(皆稅)의 확립이 훨씬 중요하고 시급하다. 근로소득자의 39%, 자영업자의 41%가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 것은 누가 봐도 비정상적이다. 저소득층일망정 적은 액수의 세금이라도 내야 ‘복지는 세금’이라는 인식이 정착할 수 있다. 탈세 방지도 절실한 과제다. 한국은 지하경제가 실질 국내총생산(GDP)의 27%에 달해 남유럽 재정위기국들과 맞먹는 실정이다. 탈세 방지는 추가 세원(稅源) 발굴과 더불어 납세 저항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언젠가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가 불가피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증세보다 ‘낮은 세율-넓은 세원’이 정도(正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