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일러스트=이정학 기자 luis80@munhwa.com

나는 결심하지만 뇌는 비웃는다 / 데이비드 디살보 지음, 이은진 옮김 / 모멘텀

“건강을 위해 술과 담배를 끊고 매일 1시간씩 운동을 해야지.” 사람들이 흔히 세우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계획 중 하나다. 하지만 눈 앞의 욕구를 포기하고 내린 이런 단호한 결심은 정작 일상에서 무너지고 만다. 왜 그럴까. 과학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그게 네 탓이 아니었다”면서, 그 이유를 “당신 뇌 때문이야”라는 진단을 내린다. 모든 것이 의지 부족 탓인 듯 했는데, 뇌 때문이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저자는 방대한 인지과학 연구 결과를 토대로, 도전하려는 순간 안주하고, 반성의 순간 핑계를 대고, 집중하려고 하지만 딴 생각을 하는가 하면, 열심히 하려는데 게으름을 피우고, 당당해야 하는 순간에도 눈치를 보는 것도 모두 뇌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뇌는 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을 뿐 아니라 믿고 싶은 대로 믿기 위해 증거를 찾아내는 식의 성향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뇌를 지식·지혜를 책임지는 기관으로 생각하지만, 알고 보면 자기 편한 대로 작동하는 기관이라는 얘기다. 저자에 따르면 뇌는 작동이 간편하도록 규칙을 세우고, 최소한의 노력만 들이려 한다. 위험을 줄이고 피해를 방지하도록 진화해왔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뇌에 대한 대표적 오해는 모두 다섯 가지. 발전적이고 치밀하면서 성실하고 주도적이면서 스마트할 것이라는 건 뇌에 대한 착각이며 오해, 기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책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의 뿌리를 알게 해 주고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하라’ 식의 훈계조의 자기계발서가 식상하거나 그런 부류의 책들로 인해 ‘모든 게 내 의지 부족’이라고 낙담했던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성찰하게 만든다.

◆뇌는 발전적일 것이라는 착각 = 저자는 확실성과 패턴화를 중심으로, 뇌는 항상 발전을 도모할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착각임을 일깨워준다. 확실성이란, 우리의 뇌가 크건 작건 우리가 어떤 결정이나 믿음이 맞다고 느낄 때 행복해하는 뇌의 성향을 의미한다.

뇌는 이런 느낌을 추구하기 위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늘 해오던 방식을 추구하고, 불편한 조언에는 귀를 닫고, 믿고 싶은 대로 믿기 위해 증거를 찾아내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저자는 뇌의 이런 활동이 어이없는 실수를 초래한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끔은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뇌가 “멈춰!” 하고 외칠 때에도 과감하게 뛰어내리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패턴화는 다른 말로 ‘우연의 힘’이라고도 한다. 우연히 발생하는 어떤 일에서 일정한 패턴을 발견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뇌의 성향을 일컫는다. 어떤 경험이나 상징, 이미지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고자 하는 뇌의 욕망은 인간이 진화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지만, 문제는 이런 성향이 자주 적정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긍정의 힘에 대한 맹신, 무조건 잘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은 모두 여기에서 기인한다.

◆뇌는 치밀할 것이라는 오해 = 우리는 대개 뇌가 이성적·합리적이고 냉철하게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다. 뇌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보상을 받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당장 피드백이 주어지지 않으면 한없이 미루기 일쑤다.

저자는 “값비싼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소비자를 대할 때 이런 성향을 이용한다”며 “고가의 자가용을 구입하러 갔다면 영업사원이 월 할부금을 강조한다는 것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매달 지불하는 액수 즉, 즉각적인 문제가 마음에 들면 이자를 포함해 지금부터 몇년간 내야 하는 액수, 즉 장기적인 문제는 슬며시 덮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뭔가에 쉽게 중독되는 이유도 이런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온라인 게임이나 카지노는 뇌가 최소한의 에너지로 ‘즉각적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환상’이다.

뇌는 또 어떻게든 에너지를 아끼려 하기 때문에 중요한 일을 처리하느라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틈만 나면 딴생각을 하며 머리를 식히게 마련이다. 대니얼 길버트(심리학) 하버드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깨어있는 시간의 46%는 딴생각을 하며 보낸다. 저자는 그 이유를 한 마디로 단정하기 어렵지만 우리가 멍하게 정신을 놓고 있을 때 종종 과거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상황을 떠올린다는 사실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자동조종장치 스위치를 켜고 멍하게 있는 자신을 좋아하든 안 하든, 확실한 것은 우리의 뇌가 자동조종장치를 켤 때 행복해하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뇌는 성실할 것이라는 기대 =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맬컴 글래드웰이 그의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 소개한 이 법칙은 한 가지 일에 1만 시간 동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도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는 데 필요한 첫째 조건으로 ‘성실함’을 꼽고 있으며, 수많은 자기계발서에서 가장 강조하는 덕목도 단연 ‘성실하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뇌는 성실한 노력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저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뇌는 태어날 때부터 가장 안전하고 저항이 적은 길을 선택해 쉽게 해결하려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가능성 있는 경쟁만 하고 싶어하는 뇌에게 ‘꾸준한 노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무모하고 의미 없는 도전일 뿐이다. ‘상상하면 이루어진다’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메시지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끌리는 이유 또한 뇌의 이러한 성향과 무관하지 않다.

가뜩이나 에너지를 아끼려 하는 뇌를 어르고 달래 수개월에 걸쳐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나면, 그때부터는 ‘나는 성실하고, 남들보다 훨씬 자제력이 강하다’고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된다. 뇌가 그렇게 인식하고 나면 그동안의 수고를 보상받고자 하는 즉각적 보상 심리가 작동하게 되고, 결국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그동안의 수고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뇌는 주도적일 것이라는 믿음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적극적이고 분위기를 잘 주도하는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이 적극적인 성격, 유머 감각, 센스 있는 옷차림, 인맥 관리법 등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로리 산토스 예일대 교수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오늘날의 사회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뇌는 방어적이고 보수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성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거나 인맥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사실 뇌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만의 기준으로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내리고 선입관을 갖는 것, 자신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뭔가를 결정할 때 혼자 판단하기보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어하는 것, 내 의견이 다른 사람의 의견과 다를 때 슬그머니 입을 막는 것은 뇌가 이런 방식을 더 효율적이고 훌륭하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뇌는 스마트할 것이라는 환상 =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아는 데 안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들이 핑계를 댈 때 습관적으로 내뱉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의 밑바닥에는 ‘내 뇌는 스마트하고 완벽한 존재’라는 의식이 반영돼 있다. 뇌는 정말 스마트할까?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기억은 불완전하다. 강렬한 감정에서 나온 날카로운 기억들, 흔히 ‘섬광 기억’이라고 부르는 기억들조차 시간이 지나면 틈이 생기고 갈라지면서 흐려지기 마련이다. 자세한 기억에 구멍이 숭숭 뚫려서 그 사건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 구멍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커지게 된다. 뇌는 때로는 엉뚱한 정보를 기억하는 대신 정작 중요한 정보를 지워버린다. 다른 사람의 한마디에 자신이 직접 확인한 정보를 거짓으로 치부하는가 하면, 체크리스트가 없으면 아주 사소한 매뉴얼조차 깜빡하고, 방향을 잘못 잡아 엉뚱한 노력을 쏟아부으면서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는 아둔한 존재다.

김도연 기자 kdych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