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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뒷골목 사랑 / 양태자 지음 / 이랑

프랑스 화가 잡(JOB·자크 옹프루아 드 브레이유·1858 ~ 1931)이 1483년 오스트리아의 마르게리타(마르그리트 도트리슈)의 결혼식을 상상해 그린 그림을 보면 코미디 같은 서양 중세의 결혼식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세 살 된 신부가 몸도 가누기 힘든 드레스를 입은 채 옷자락을 질질 끌며 늠름한 신랑 뒤를 따라가고 있는 그림의 장면은 믿기지 않겠지만 당시 실제 일어난 일이다. 세 살된 도트리슈 공주는 아버지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1459~1519)가 정해준 프랑스의 열세 살 난 왕자(루이 11세의 외아들 샤를 8세)와 정략결혼을 했는데, 이는 비록 소꿉장난처럼 보여도 엄연히 합법적인 ‘지배권을 가진’ 문트(Munt) 결혼이었다. 문트라는 단어는 독일어로 보호, 직권, 권한, 지배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문트 결혼은 결혼 뒤 딸에 대한 보호권과 지배권을 남편에게 넘기는 것으로, 남녀 간의 사랑보다는 가문과 가문 사이의 정치적인 결혼 동맹이었다. 역사학자들이 ‘결혼 장사’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 이 결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문 사이에 오고가는 협상서였다. 또 협상에 따른 조건을 이행하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독일 예나대에서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중세 유럽 풍속사를 집필하고 있는 저자는 새 책에서 현대인의 눈으로 봤을 때 기이한 결혼제도에 초점을 맞춰 중세 유럽인들의 ‘성과 사랑의 풍속사’를 들려준다.

저자에 따르면 중세의 결혼 방식은 문트 결혼과 프리델 결혼, 캡스 결혼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남편이 부인에게 합법적인 지배권을 가진 결혼이 문트 결혼이며 프리델 결혼은 남녀 간에 사랑으로 이뤄진 결혼을 의미한다. 프리델 결혼으로 맺어진 경우 남편은 부인에 대한 지배권을 가질 수 없었고 부인도 합법적인 결혼으로 얻게 되는 권리를 가질 수 없었다. 자연히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도 정식으로 상속권을 갖지 못했다. 이에 따라 중세의 프리델 결혼은 정식으로 결혼한 부인 옆에 두는 정부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캡스 결혼은 중세 초기에 나타난 결혼 형태로, 주로 영주와 종 사이에 이뤄진 결혼, 또는 자유인과 비자유인 사이의 결혼을 말한다. 주로 자유인이 원해 종이나 하녀들과 하는 결혼의 유형이다.

책에서는 또 게르만족에게 전해진 미혼남녀의 사랑 찾기 ‘찾아가는 밤’과 오늘날까지 민간처방으로 전해지고 있는 신랑감을 찾는 갖가지 처방, 성애를 위한 마법의 재료들, ‘결혼을 도와주는 남자’를 통한 아이 낳기, 신혼 첫날밤의 닭고기와 뉘른베르크 잔의 유래, 독일 최초의 법전 ‘작센슈피겔’에 나온 성희롱 벌금형의 사례 등 중세 성 풍속의 다양한 모습이 소개된다.

저자는 중세의 삶을 지배한 것은 종교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와 함께 중세 유럽 1000년의 세월 동안 지역마다 시대마다 서로 다른 성 문화와 유행, 결혼 풍속도가 나타난 것은 그리스도교의 확산 속도에 따른 차이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