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결국 한일관계 악화를 무릅쓰고 독도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선택했다. 한국이 거부할 것을 예견하면서도 ICJ 제소 절차에 들어감으로써 독도를 국제 분쟁지역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번 결정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홍콩 운동가의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상륙으로 ‘약한 외교’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자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정부가 이를 무마하기 위해 내놓은 정치적 카드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독도는 일본고유 영토’라고 줄곧 주장하면서도 별다른 대응책이 없었던 일본 정부가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여론이 들끓는 상황을 놓치지 않고 ICJ 제소를 위한 절호의 찬스로 이용한 측면도 있다.

일본 정부는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 직후부터 ICJ행을 예고해왔다. 겐바 고이치로(玄葉光一郞)) 외무상은 이미 지난 11일 “ICJ에 제소하지 않은 것은 한일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것”이라며 “이제 한국에 대한 배려가 불필요해진 만큼 ICJ 제소 검토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일본은 ▲분쟁당사국 중 한 국가가 상대국에 제소를 제안해 공동 소장을 만들거나 ▲한 나라가 소장을 제출한 뒤 상대국 동의를 얻는 방법이 모두 한국 정부의 거부로 이뤄지지 않아도 이를 통해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고 국제사회에 일본의 주장을 이해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일본 정부는 독도가 1905년 각의 결정으로 시마네(島根) 현에 편입된 경위와 1951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서 독도를 일본이 포기해야 할 한국 영토로 명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핵심 논거로 삼고 있다. 앞서 일본 정부는 1954년과 1962년 한국 정부에 두 차례 독도문제의 ICJ 제소를 요청했으나 우리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아 재판에 이르지 않았다.

이 같은 ICJ행은 일본 정치, 외교 및 영토 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무엇보다도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홍콩시민단체의 센카쿠 열도 상륙으로 그렇지 않아도 지지율이 하락 중이던 노다 총리는 정치적 궁지에 몰렸다. 소비세 인상에 정치적 생명을 걸었던 노다 총리는 지난해 8월 취임 이후 외교는 후순위에 두고 국내 정치에 주력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홍콩 운동가의 센카쿠 열도 상륙이 진행되자 야당뿐 아니라 민주당 내에서도 노다 총리의 약한 외교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노다 정부가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대해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이 중국측에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 홍콩운동가들이 센카쿠 열도에 상륙을 강행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특히 2010년 중국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 이후 일본 정치권에서 영토 문제가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이에 대해서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 독도문제에 대한 ICJ행을 더욱 부추겼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