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최태원(맨 뒷줄 가운데) SK그룹 회장과 SK하이닉스 직원들이 6월29일 충북 청주 제3공장 M12 준공식을 마친 뒤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기적(奇跡)!’

2001년 하이닉스(현 SK하이닉스) 주가는 ‘담뱃값’으로 불렸다. 하이닉스 주가가 1400원까지 떨어져 당시에 많이 팔리던 국산 담배 ‘디스 플러스’의 값과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여의도 증권가에는 ‘담배를 끊고 정보기술(IT) 주를 사라’는 ‘새로운 금연법’이 화제를 모았다. 주가가 떨어져도 ‘금연에 성공했다’는 위안이 가능하고, 주가가 오르면 건강뿐만 아니라 돈까지 벌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게 당시에 회자된 이색 금연법의 요지였다. 그 뒤 하이닉스 주가는 담배 1갑이 아니라 담배 반 갑 가격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만큼 하이닉스는 한국 기업사에 ‘슬픈 회사’의 이미지로 오랫동안 각인돼 왔다.

그랬던 하이닉스가 2005년 7월 45개월 만에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조기 졸업한다고 발표했을 때 세상은 떠들썩했다. 하이닉스의 부실을 털어내야 한국 경제 전체가 살 수 있다는 ‘하이닉스가 죽어야 한국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하던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벼랑 끝까지 몰렸던 이 회사의 부활을 세상은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그 뒤 올 2월14일, ‘죽지 않는 신화’인 하이닉스는 장구한 세월이 걸린 매각 작업을 마무리하고 특별한 인연을 만나게 된다. SK그룹이라는 든든한 주인을 만나 3월26일 ‘SK하이닉스’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출발을 알리게 된 것이다.

새 출발을 선언한 SK하이닉스가 직면한 상황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유럽발 경제위기의 파장으로 올해는 점차 개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IT 산업의 여건이 다시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산업에 짙게 드리워진 불황의 그림자가 여전한 상황에서 SK하이닉스는 6월29일 SK그룹 편입 이후 첫번째 공장인 충북 청주 제3공장 M12의 문을 열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한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청주 M12라인 가동식 현장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각오는 비장했다. 최 회장은 이날 “현재의 경영 환경을 지켜보자면, 성장보다는 생존을 이야기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며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움츠러들기보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앞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내딛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대개 기업이 인수·합병(M&A)을 할 경우 피인수 회사의 문화와 전통을 자연스레 모기업에 흡수시키는 것과 달리 그동안 SK하이닉스가 보여온 강점을 인정하고 SK그룹의 문화와 융화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동안 숱한 고비를 넘기며 생존해온 SK하이닉스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SK그룹에 인수된 뒤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른 변화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 6월 한 달 동안에만 미국 IBM과 차세대 메모리 공동개발을 위한 협력을 맺은 데 이어 이탈리아의 반도체 회사인 아이디어 플래시와 미국의 비메모리반도체(컨트롤러) 업체인 LAMD 인수라는 대규모 거래를 잇달아 성사시켰다.

최근 SK하이닉스의 과감한 변화 뒤에는 안정적인 오너십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적인 평가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가 그룹 내 신성장 동력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과감한 투자를 진두지휘하고 수차례에 걸쳐 현장을 방문해 경영을 직접 챙기고 있다. 올 1분기 SK하이닉스는 D램 시장에서 사상 최고인 23.9%의 점유율을 기록하면서, 세계 2위의 메모리회사로서의 입지를 재확인했다.

SK하이닉스는 현재의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기술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판단 아래 매출의 10% 수준에 달하는 연구·개발(R&D) 투자를 지속하기로 했다. 특히 모바일 시대에 부응하기 위해 제품 포트폴리오를 개선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권오철 SK하이닉스 사장은 요즘도 직원들에게 ‘헝그리 정신(Stay Hungry)’을 강조하고 있다. SK그룹의 일원이 된 것에 안주하지 않고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잊지 말자는 의도에서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아직도 업계에선 SK하이닉스의 부활을 기적이라고 부르지만 그 이면에는 임직원들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다”며 “최근 유럽발 재정위기와 불투명한 IT 경기 등 넘어야 할 산은 무수히 많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으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해동 기자 haed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