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자영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공원에서 사진촬영 도중 빈스윙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dhk@munhwa.com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는 ‘마르지 않는 샘’이다. KLPGA투어를 통해 매년 새로 탄생한 스타 선수들은 미국으로, 일본으로 진출해 세계 최강의 여자골프군단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올해도 KLPGA투어에서 또 한 명의 샛별이 탄생했다. 프로 3년차 김자영(21·넵스) 프로다. 김자영은 KLPGA투어에서 최근 끝난 우리투자증권 클래식(5월20일)과 두산 매치플레이챔피언십(5월27일)에서 잇따라 우승하며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31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만났다. 그의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스포티즌 사옥 1층 갤러리에서 만난 김자영의 표정은 무척 밝았다. 그는 이날 오후 서울 잠실야구장으로 달려가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와 KIA 타이거스 경기에 앞서 시구를 맡았다. ‘2주 연속 우승’을 한 김자영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어렵사리 만난 그가 맨 먼저 건넨 한마디는 “(이번 인터뷰가) 아마 열두세 번째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 최명식 차장 (체육부)

먼저 우승 소감을 물었더니 당돌했다. “운좋게 갑자기 우승한 것은 아닙니다. 남 몰래 많이도 울었어요. 분명한 것은 우승덕에 앞으로 선수생활에서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올해 초 정말 독한 마음을 먹었어요. 호주로 전지훈련을 갔는데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두달을 훈련에만 전념했습니다. 이때 유럽여자골프투어 RACV호주 레이디스마스터스대회에 출전할 기회도 있었지만 포기했어요. 대회에 출전하면 전지훈련 성과를 거둘 수가 없겠다는 판단이 서더라고요.”

김자영은 지난 4월 국내 개막전인 롯데마트여자오픈에서 컷 탈락했고, 2주 뒤 열린 리바트레이디스오픈 때 46위에 그쳐 부진했다. 전지훈련 때 좋았던 샷 감각이 ‘꽝’이 돼버렸던 것. 그러나 샷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 가짐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우선 마음부터 고쳐 먹기로 했죠. 지난해까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플레이를 했다고 반성을 많이 했어요. 성원해주는 팬들도 있고, 스폰서도 있고, 말은 안했지만 이제껏 뒷바라지해 주신 부모님들도 기대를 많이 했기 때문에 빨리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죠.” 그는 자신의 이런 마음이 프로생활 2년동안 오히려 독이 됐다고 말했다. ‘우승 조급증’으로 이어졌다. 동급생이나 후배들도 우승을 하는데 자신만 못한다고 생각하니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주위사람에게 더 빨리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허우적댔다고 돌아봤다.

“그런데 남한테 잘 보이기보다는 내 자신을 위해 공을 치자고 다짐했고, 뭔가 해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마음 비우고 내가 준비하는 것을 믿고 내가 만족할 수 있는 플레이를 하겠다고 마음 먹으니까 긴장을 덜하게 되더라고요.”

그는 이런 마음 가짐이 우승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믿고 있었다. 그는 시즌 초반만 해도 마지막 라운드 때면 부진의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했지만 5월 이후에는 마지막 날까지 체력이 떨어지지 않았고 자신의 힘으로 역전 우승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에 기술적인 변화도 그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데 한몫을 했다. 전지훈련 때 이언 캐릭스 코치에게 지은희, 유소연 프로와 함께 배웠다. 골프를 배우면서 여러 코치를 거쳤는데 대부분 그의 문제점은 알았지만 해결책은 시원하게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캐릭스 코치는 처방까지 내렸다.

그의 스윙은 머리 축이 너무 고정되다보니 백스윙 이후 ‘역 피벗 현상’이 생겼고 이로 인해 스윙이 ‘인사이드 아웃’이 돼버려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공이 가는 문제점이 있었다. 캐릭스 코치는 그의 스윙을 고쳤다. 백스윙 때 머리를 좀 더 오른쪽으로 갔다가 다운스윙 때 몸 전체를 다시 어드레스 위치로 가게 하면 훨씬 파워가 실리고, 머리 축도 뒤로 남지 않게 바꿨다. 최근 스윙교정을 한 타이거 우즈도 이런 스윙으로 바꾸었다. 간단할 것 같았지만 고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이후 그의 스윙 결과가 달라졌다. 그는 지금도 완벽하게 고쳐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가끔 경기에 몰입하다 보면 옛날 버릇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을 믿고 스윙을 한다. 그러나 경기가 끝나면 자신의 스윙을 모니터링해 보완하고 있다.

그는 첫 우승때 사실 우승하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첫날 2언더파를 쳤고, 둘째날 7언더파를 쳐 마지막날 공동선두로 나섰다. 챔피언조는 몇차례 해봤지만 시작 전부터 선수들간 보이지 않는 경쟁심으로 부담이 큰 편이다. “제일 편한 조가 챔피언 바로 앞 조”라면서 “실제 앞 조에서 우승자가 많이 나오는 편”이라고 말했다.

위기도 있었다. 첫홀부터 보기를 했는데 경쟁자가 버디를 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2타차가 났다. 그래서 ‘이러다 또 못하는 것 아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2번 홀에서 버디를 뽑아내며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18홀 끝날 때까지 정신이 없었다는 그는 우승보다는 한타 한타에 집중했고 마침내 18번 홀에서 버디퍼트를 성공시킨 뒤 연장에 돌입한 사실을 알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경기중에는 리더보드를 절대 보지 않는 편이다. 의식적으로 보는 것을 피한다고 했다.

그는 우승 후 제일 먼저 가족 얼굴이 떠올랐다고 했다. “지금까지 골프를 하면서 가족들의 희생을 떠올리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때마침 아빠가 옆에 계셨는데 ‘우리딸 수고했다’며 어깨를 토닥여줬어요.”

첫 우승 후 아주 바빴던 3일이 지났고, 곧바로 두산매치플레이 프로암에 참가한 게 연습 라운드의 전부였다. 그 때문에 ‘2주 연속 우승’에 대한 기대는 눈꼽만큼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지난주 대회우승자인데 1회전에서 탈락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고 이런 부담감을 떨치려 노력했다. 사실 그는 지난해 매치플레이에서 1회전 탈락했다. ‘한번 우승하고 없어지는 선수는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는 의외로 승승장구했다. 결승전 직전까지 17, 18번 홀까지 가지 않고 16번 홀 이전에 모든 경기를 속전속결로 끝냈다. 체력도 아낄 수 있었다. 결승전에 오르기 전까지 매 대결이 고비였지만 8강전과 4강전이 가장 큰 고비였다. 전반에 뒤지다가 9번 홀에서 동타를 만든 뒤 후반에 역전했다.

결승전 상대는 가장 친한 친구 정연주였다. 둘은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 가장 피하고 싶은 상대였다. 수요일 프로암 때 퍼팅 그린에서 농담 삼아 “우리 결승전에서 만나자”고 했던 게 현실이 된 것이다. 둘은 서로 공치는 스타일이 비슷했다. 연습 때는 자주 공을 쳤지만 공식경기에서는 처음이었다. 누구보다 절친이었지만 결승전을 치른 18홀 내내 말 한마디 주고 받지 않았다. 그는 “준결승을 포함해 이날만 36홀 플레이여서 힘들었고, 무엇보다 어떤 말을 해도 어색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우승해 본 사람이 우승한다’는 말에 동감을 하게 됐다는 그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우승하는 지 이제는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역시 여느 선수처럼 그도 아버지의 역할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초등학생 시절 소년체전에 출전할 만큼 수영을 잘했던 그는 운동 신경이 좋았다. 그러나 수영 한번 하고 나면 기진맥진해 있는 딸이 안쓰러워 아버지가 골프를 권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다른 선수에 비해 늦게 시작했기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했다.

고2와 고3년 때는 프로선수가 될 준비를 해야 할 시기였는데 아버지와 잦은 충돌이 있었고 골프를 중단할 만큼 고비도 있었다. 몸이 왜소한 데다 비거리가 안나자 아버지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주로 잘 먹어야 힘쓰는데 너무 골라먹는다는 게 요지였다. 한의사인 아버지가 주치의 역할을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이나 보약, 운동 근육에 대해 딸을 위해 공부했다. 지금까지 보약값만 해도 족히 “한장(1억원)은 넘을 것”이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이런 지극정성에도 김자영은 주니어 시절 뛰어난 성적을 올리지는 못했다.

지난 5월 초 김대섭 프로에게 배운 퍼팅 노하우 덕에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는 “프로라 해도 필요할때 언제, 누구한테라도 배우겠다는 학습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면서 “남의 눈에는 내 단점이 정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독불장군은 없다”고 말했다. 그도 샷이 잘 맞지 않을 때는 외국선수처럼 푹 쉬면서 다음을 준비하고 싶지만 아직은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는 편이라고 했다. 그 역시 한국에서 골프를 배웠기에 우선 연습장에 가서 문제점을 찾아내 연습에 몰두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스윙과 함께 클럽을 바꿔 성공했다. 비거리도 전보다 늘어나 드라이버 비거리는 선수 중 중간(240~250야드)급이다. 혼마클럽을 사용하고 있는 그는 “회사측에서 선수가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피팅(fitting)’을 해 준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 클럽은 시판중인 ‘파이브 스타’를 능가하는 성능의 클럽으로 돈으로 따지면 한세트 가격이 수천만 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골프에 입문한 지 8년째인 그는 이번 우승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골프란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골프를 칠 때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 항상 좋은 감을 유지하려면 꾸준한 연습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에겐 유난히 ‘삼촌 팬’이 많다. 이에 대해 그는 “골프를 즐기는 연령대가 삼촌뻘 되는 연령층이 많기 때문”이라면서 “대회 때마다 갤러리로 응원하는 삼촌 팬들을 보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어려 결혼이나 구체적인 인생 계획은 세워두지 않았지만 준비를 잘해 미국이든, 일본이든 해외 무대에 내년쯤 진출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회 때마다 기복 없이 꾸준한 플레이를 하다보면 3승, 4승도 하고 상금왕에도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그는 오는 8일 제주 롯데스카이힐골프장에서 열리는 칸타타여자오픈(총상금 5억 원)에서 ‘3개 대회 연속 우승’을 노린다. 그는 “지금 자신감 그대로 갖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