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빈소 찾은 정몽구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에게서 불황극복의 키워드를 찾아라.’

빈곤과 역경을 밑거름 삼아 글로벌 기업을 일으켜 세운 박 명예회장의 삶은 유럽발 재정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심화로 곤경에 처한 한국경제에 ‘위기극복의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는 분석이 재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고인은 1958년 자유당 정부 시절부터 시작해 다섯 차례나 무산됐던 종합제철소를 세우기까지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미칠 정도로 혼신의 열정을 쏟는 의지와 태도, 완벽주의, 창의 경영, 사람 중시의 경영이념, 위민(爲民) 사상 등 박 명예회장의 핵심 행동 철학은 무기력과 냉소주의가 범람하는 한국 사회에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 명예회장은 최고경영자(CEO)로서 지휘봉을 잡았을 때나 은퇴 이후 사회 교육자로 일할 때 한결같이 “사람은 미치광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가 아니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얘기해 왔다. 포항종합제철소 건립 당시 “종합제철은 거대한 부실기업이 될 것이며, 생산비가 높아 수입강재를 쓰는 게 낫다”는 국내 여론의 반대를 그는 철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열정과 자신을 불사르는 소명의식으로 돌파해 나갔다. 온정주의와 적당주의가 경쟁력을 갉아먹는 국내 기업 현실에서 ‘미쳐야 목표를 이룩할 수 있다’는 박 명예회장의 소신은 불황을 이겨낼 수 있는 키워드 중 하나다.

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1987년 당시 “박 회장은 경영에 관한 불패의 명장이며, 후세의 경영자들을 위한 살아있는 교재로서 귀한 존재”라고 말한 바 있다. 1960년대 한국경제 현실에서 상상하기조차 힘든 도전이었던 종합제철 건설 당시 박 명예회장의 창조적 경영정신으로 겨울 바다의 험한 파도, 매서운 바람과 싸우면서도 공기를 단축하고 투자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었다. 기존 제철소는 제품 생산 순서에 따라 제선-제강-압연 공장 순으로 건설하는 포워드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은 생산공정이 짧은 제품생산 공장부터 먼저 건설하는 백워드 방식이라는 역발상으로 접근했다. 수입한 반제품으로 완제품을 만들 때 생기는 이윤으로 나머지 공장 건설에 투자하면서 제철소를 완성해 나갔다. 고인은 완벽주의를 토대로 하면서도 역동성을 살리는 경영의 묘를 발휘했다. 그는 현장지휘를 할 때 “나는 사장이 아니라 전쟁터 소대장이다. 전쟁터 소대장에겐 인격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영인 순환보직, 조직의 자율과 책임문화 등을 통해 기업의 역동성을 살렸다.

1971년에 제철장학회를 설립, 임직원 자녀의 교육지원은 물론 지역사회와 어려운 학생을 위한 장학사업의 기반을 만들었다. 그의 사회적 책임경영도 포스코가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갖춘 제철소로 발돋움하는 원동력이었다. 이는 불황일수록 주변을 보살피는 따뜻한 경영이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박 명예회장은 생전에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10년은 걸린다. 몇날 밤이고 진지하게 10년 후의 청사진을 그려보라”고 말하곤 했다. 글로벌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자 그는 1986년 과학입국을 위해 포항공대(현 포스텍)를, 87년에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을 설립했고,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과학 인재를 잇따라 배출해 낼 수 있었다.

박 명예회장이 환경이 살아 숨쉬는 제철소를 꿈꾸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것도 ‘탄소 경영’이 보편화되기 훨씬 이전인 1970년대였다. 늘 미래를 꿰뚫어보며 난관을 돌파해온 그의 지혜는 국내 경제계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게 경제인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예진수기자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