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임덕호 한양대 총장이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서울캠퍼스 집무실에서 단과대학별 자율·책임경영제 도입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임정현기자 theos@munhwa.com

“제 브랜드가 무엇이냐고요? 한마디로 자율·책임경영제입니다. 각 단과대학 학장들이 기업가 정신과 최고경영자(CEO)형 마인드를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인사 및 재정 권한을 대폭 이양하고 있습니다.” 6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 한양대 서울캠퍼스 집무실에서 만난 임덕호(57) 총장은 지난 반년간 대학개혁을 진두지휘한 본인만의 색깔이 무엇이냐고 묻자 즉각 이같이 대답했다.

오는 18일로 취임 6개월을 맞는 그는 1986년 미국 라이스대학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1988년부터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해 온 ‘경제학의 달인’답게 총장직을 맡자마자 학교 운영에 시장과 경쟁의 원리를 도입했다.

“분권화를 주제로 내세우고, 이를 통해 자율경영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단과대학들이 스스로 주요 사항을 결정하고 스스로 경쟁력을 키워 나가야 하는 시스템이지요. 당연히 인사권의 자율성, 재정권의 자율성을 전제로 합니다. 인사를 예로 들어볼까요? 9월1일자로 직원 인사를 단행했습니다. 과거 같으면 서울캠퍼스 총무처에서 보직 발령을 모두 내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서울과 에리카(경기 안산 소재) 캠퍼스 인사대상 총원을 분리 배정한 뒤 서울캠퍼스는 이곳 총무처에서, 에리카캠퍼스는 그곳 총무처에서 각각 총장 또는 현지 부총장과 상의해 시행했습니다. 내년부터 교수들도 단과대별로 총원만 배정하면 학장이 알아서 충원하도록 인사권을 주려 합니다. 자율 재정권도 줍니다. 교수를 많이 채용하면 인건비(코스트)가 늘겠지요? 이를 상쇄할 수입이 있어야잖아요? 등록금·발전기금·교육 수익사업의 3대 수입을 단과대별로 조성하도록 맡기고 본부에는 조성액의 25~30%만 보내도록 할 겁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전기·수도료도 지금까지는 대학 본부가 총괄 지불했는데, 이것도 내년부터는 단과대별로 관리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흡사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책임본부장제처럼 과거 사장 혹은 기관장에게 집중돼 있던 인사·재정 등 핵심 관리 권한을 사업단위 본부별로 할당해 준다는 과감한 발상이다. 이를 위해 임 총장은 서울캠퍼스에 교학부총장·경영부총장·의무부총장을, 에리카캠퍼스에 전담 부총장직을 따로 신설했다. 예컨대 서울캠퍼스의 의무부총장은 서울·구리 소재 한양대 종합병원 관리를 총괄 지휘하게 된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의 명품 브리핑을 청취하듯 홀려서 듣다 보니 문득 의문이 생겼다. 단과대별로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고, 학생·직원·교수의 충원까지 자율경영 원칙하에 운용하라고 일임해 버리면 기초학문을 담당하는 철학·사학 등 인문계열 대학과 응용학문인 경영학·공학 같은 사회과학·이공계 대학 간에 격차가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등록금은 차치하더라도 발전기금 모집이나 수익사업을 벌이는 데 있어 철학과와 경영학과를 동일 선상에서 경쟁시킬 수 있을까? 이른바 ‘사자와 소를 한우리에 풀지 말라’는 원천적 불공정 경쟁이론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지만 임 총장의 대답은 명쾌했다.

“단과대학별 자율 예산을 운용하면 각각 규모에 맞는 수입·지출 모델이 생깁니다. 의과대학처럼 지출이 많은 곳은 수입도 많죠. 수입과 지출 면에서는 대학별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우리는 교육·연구·국제화·취업 등 각종 지표를 다른 경쟁대학의 유사 학과와 상호 비교합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어느 쪽이 나으냐를 따집니다. 그러니까 사자는 사자끼리, 소는 소끼리 비교하는 거죠. 이공계열, 인문사회계열, 예체능계열을 각각 나눠 평가합니다. 원천적 불평등, 상대적 유불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최근 대학 사회는 무한경쟁과 구조조정의 개혁 압력에 내몰리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개혁위원회를 가동시켜 벌써 2개 부실대학을 폐쇄 계고하고, 재정지원 및 학자금대출 제한대학 43개의 명단을 발표한 바 있다. 임 총장의 자율·책임경영에도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작용한 것일까.

“전임 (김종량) 총장께서 18년간 한양대를 운영해 오셨습니다. 단기간 내 압축성장을 이뤘지요. 명실공히 사학 명문의 반열에 올려놓은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만두셨어요. 제가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갑자기가 아니고 1년 전부터 착착 준비해 오신 걸 깨달았습니다. 신임 총장이 매달 뭘 해야 할지 꼼꼼하게 정리하신 다이어리를 넘겨주시더라고요. 전 총장께서 발표하신 퇴임 성명서 중에 ‘후임 총장은 대학 경영의 패러다임을 분권화를 통해 바꿔 가야 할 것’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중앙집권식으로 18년간 압축 성장시킨 후 한계를 느끼신 게 아닌가 짐작됐습니다.”

임 총장의 대학 분권론은 계속됐다.

“최근 10여년간 국내 대학들이 양적·질적으로 성장, 아니 팽창을 했잖아요? 특히 수도권 대학은 캠퍼스 부지·건물, 교수·직원·학생수와 전공과목수 모두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대학을 둘러싼 외부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요. 다원화 사회에 맞춰 단과대학의 특성을 살려 가야 합니다. 획일적인 중앙집권적 리더십으로 끌고 가긴 힘들게 된 겁니다. 시스템도 바꾸고 사람도 달라져야 합니다.”

―본·분교 통합계획은 없나요.

“양대 캠퍼스에 중복 학과가 70~80%나 되기 때문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어렵습니다. 산학협력단을 분리해 에리카캠퍼스에도 뒀습니다. 하나의 재단에 2개의 캠퍼스로 건전한 상호경쟁 체제로 가려 합니다. 서울캠퍼스는 교육과 연구 중심으로, 에리카캠퍼스는 교육과 산학협력 중심으로 설정해 봤습니다.”

노성열기자 nos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