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희옥 동국대 총장이 지난 5월25일 이뤄진 인터뷰에서 취임 100일을 맞은 소회와 대학의 미래상을 밝히고 있다. 김호웅기자 diverkim@munhwa.com

법조인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한평생 법의 길을 걸어오면서 사회 현안들을 다루고 시대의 격랑과 맞서온 검찰 출신의 면모 때문이었으리라. 김희옥(63) 동국대 총장. 그 스스로가 고백한대로 “오랫동안 격렬하고 빠르게 움직이며 ‘탁탁’ 하며 부딪치던 습관이 있어서”였던 것 같다. 처음 대하는 그의 웃음 짓는 얼굴 너머에는 엄격함과 날카로움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한국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 중 하나인 동국대학교의 총장이다. 1일로 취임 100일을 맞았다. 지난 5월25일 서울 중구 필동 이 대학 본관의 집무실에서 김 총장을 만나 향후 경영구상과 대학의 미래상에 대해 들었다.

―법조계에 계실 때에는 위엄, 강직함 같은 덕목이 요구되지만 대학 총장은 좀 더 부드러움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웃으면서 던진 이 질문에 그는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면서 하는 말. “하지만 시프트(이동)가 그렇게 빨리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하하하.”

―취임 100일을 맞았습니다. 가장 기억나는 일이 뭡니까.

“지난 3월21일 동국대 제2건학을 위한 밑그림을 발표할 때였습니다. 대학 발전 계획을 모든 구성원에게 알리는 날이었죠. 동국대가 앞으로 한국과 세계에서 차지하는 청사진을 밝힌 사건인데, 그게 아무래도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취임 100일 동안 학교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우리 대학이 불교 종립대학인 만큼 스님들의 말씀을 많이 들어보는데, 분위기는 이전보다는 훨씬 좋아졌다고 하십니다. 서로 화합해서 창의적 의견을 내고 이를 집행해 종립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동국대는 105년이란 역사 속에서 23만명에 이르는 동창을 배출한 대학이다. 한국 최고(最古)의 기록을 가진 동국이 1세기 만에 ‘제2건학’을 내건 배경이 궁금했다.

김 총장은 이에 대해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학문구조로 재편하는 일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동국대는 주로 인문사회분야를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이제 동국대는 인류의 미래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이에 응답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김 총장은 “대학은 인류의 미래를 먹여살리는 부문을 책임감 있게 고민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경기 고양 일산에 바이오메디융합캠퍼스를 건립한 것도 이 같은 미래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난 5월19일 개교식을 한 일산캠퍼스는 김 총장에 따르면 동국대 중흥의 신호탄이다. “의학, 한의학, 약학, 바이오 관련 대학들이 들어섭니다. 학생 2000여명, 교수 240여명이 상주하게 되고요. 서울과 일산, 경주 등 3개 캠퍼스 체제가 되는 겁니다. 전국적으로 한 대학의 3개 캠퍼스 체제는 동국대가 최초입니다.”

이런 뜻을 담아 김 총장은 제2건학운동을 ‘리 스타트(RE-START) 프로젝트’라 명명했다. ‘RE’는 동국의 부흥, 곧 르네상스를 뜻하며, START는 각각 시너지(Synergy), 탤런트(Talent), 건전한 재정(Asset), 책무(Responsibility), 내일(Tomorrow)의 머리글자다.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학교의 발전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김 총장의 최대 과제 중 하나다. “동아시아 불교연합대학 등 특성화한 국제화 프로그램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 4개국 대학의 불교 관련 복수학위제가 시행될 겁니다. 이미 동국대 안에 와 있는 외국유학생이 1000여명, 외국인 교수가 100명이나 됩니다. 오고가는 유학생 기준으로 교류 중인 대학이 전세계적으로 130개나 되고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여러 형태의 대학평가들이 있습니다. ‘지표경영’도 무시할 수가 없을 텐데요.

“리 스타트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세계 100대 대학’을 내걸었습니다. 우리가 한번 해보자 하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임기 중 제2건학기금 1000억원을 마련하겠다는 구상도 이미 밝힌 상황입니다.”

동국대는 지난 5월31일 제2건학기금모금 행사를 열었다. 김 총장은 취임 100일 만에 196억원의 거액을 모아 주목을 받았다.

여권에서 제기한 ‘반값등록금’ 문제가 나오자 김 총장은 다소 완곡하지만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확정되지 않은 안이라고 봅니다. 정확하게 잘 몰라 평가할 입장은 아니지만…대학에 공적 기능이 확대되는 게 바람직할까요. 교육정책이란 게 한번 만들어지면 계속 가는 건데 그런 정책이 과연 미래지향적인 것일까요. 저는 등록금 문제는 대학 자율과 자치에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김 총장이 생각하는 동국대의 힘의 원천은 한 세기를 넘은 역사, 그리고 이를 통해 형성된 동문 파워다. “역사가 105년이나 됐고 23만명이나 되는 동문이 있습니다. 가족 등 관계인을 포함하면 230여만명의 동국인 가족이 있는 건데 이게 가장 큰 힘이죠. 역사란 것, 지금까지 이뤄논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도심캠퍼스로서의 장점도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하고도 정중앙인 중구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동국대는 지금 450여대의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 지하주차장을 건설 중이다. 오는 8월 완공되면 동국대는 에코캠퍼스 기능도 갖추게 된다. 미국의 명문 뉴욕대(NYU)가 동국대의 모델이라고 김 총장은 강조했다. 그는 “동국대가 장차 시티(도시)문화의 집결지이자 학문적·교육적 토대를 굳건히 하는 대학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힘을 주었다.

―검사, 헌법재판관, 대학총장 등 이력서가 두툼합니다. 최종이력에 한 줄을 남긴다면 뭐가 좋을까요.

“글쎄요. 사법연수원 교수 때 만났던 제자들과 1년에 한 번씩 모임을 갖습니다. 이미 중견 판검사가 된 이들인데, 저를 어떻게 부를지 애매했던 모양입니다. 누구는 교수님이라 부르고, 누구는 재판관님이라고 하고, 누구는 조심스럽게 총장님 이렇게…참 어중간한 입장에 있는 거 같습니다. 하하하.”

―어떤 총장이 되고 싶습니까.

“요즘 TV를 보니 정말 노래 잘 하는 가수들이 나와 열정적으로 경연을 벌이더라구요. 일류들이 일류무대에서 벌이는 경쟁에서 동국대를 일류의 반열에 올려놓겠습니다.”

김 총장은 “대학은 반듯해야 하고 우리 사회에서 그 존재감이 뚜렷해야 한다”면서 “동국대를 학생들과 동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대학으로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인터뷰 = 허민 사회부장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