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방역 컨트롤타워’인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28일 전격적으로 사태수습 후 사퇴의사를 표명한 것은 조기종식이 요원해 보이는 상황인데도, 자신의 거취까지 구제역 사태 논란이 비화하고 있는 데 부담을 느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 장관은 이날 “지금은 사태해결에 모든 생각과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로 책임론 등 정치적 논란이 일게 되는 것은 사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관직에 연연하지 않겠지만 전투 중에 ‘장수’를 바꾸는 법이 없듯, 사태는 해결하고 떠나는 게 떳떳한 모습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유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도 이 같은 심경을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제역은 지난해 11월29일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안동권역에서 제어해 조기 종식할 수 있을 것이란 낙관론이 제기됐었다. 그러나 방역당국이 중간조사결과 발표에서 인정했듯 초기 대응실패로 ‘핑퐁’ 튀듯 순식간에 구제역 바이러스는 안동권역을 벗어나 경기, 인천, 강원, 충·남북, 대구, 경남 등 8개 시·도, 63개 시·군으로 번졌다. 이로 인해 소 14만5823마리, 돼지 272만8328마리 등 288만686마리가 살처분 매몰되고 3조원 가까운 재정이 투입됐다. 살처분의 인도적 논란과 백신 접종시기 실기 논란도 계속 나오고 있는 상태.

정치권에서도 27일 고위 당정회의에서 한나라당 일부 참석자들이 정부가 구제역 확산에 초동대처를 잘못했다고 유 장관을 강하게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같은 당 소속인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도 정부가 외국의 잘못된 (살처분)정책을 답습하고 있다고 연일 불을 지폈다. 일각에서는 이런 비판이 친이계를 중심으로 제기돼 ‘친박계인 유 장관을 흔들려 하는 것 아니냐’, ‘친이·친박계 간 갈등의 재연 소지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이 유 장관 사퇴를 집중 제기한 배경에도 유 장관이 ‘친박계’ 출신이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유 장관은 그러나 “현재 급선무는 구제역 조기 종식과 피해의 원만한 수습이며,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장관인 제가 지겠다.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공직자의 근본자세를 잃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 당장 물러날 뜻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유 장관이 평소대로 방역현장을 계속 점검할 것”이라며 “평소 소신이나 정치 행보를 봤을 때 28일 밝힌 입장은 의지가 분명한 것으로 봐도 된다”고 말했다.

이민종기자 horiz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