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윤한수(오른쪽 세번째) ‘6·25 참전소년지원병 중앙회’ 부회장이 지난 17일 대구 남구 대명동 앞산공원 낙동강승전기념관에서 견학온 어린이들에게 6·25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대구 = 신창섭기자

‘포화가 울부짖다 멈추고 흘러 반백년/ 그때를 잊고 외면하면 비겁하다/ 자유의 국토를 지키기 위한 희생으로/ 미처 피지도 못한 나이 어린 소년병/ 그 하나뿐인 목숨 주며 나라 보존하고/ 이 황폐한 국토를 일궈 오늘이 있음이/ 무엇 때문의 희생이란 말인가/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를 뿜으며/ 소낙비 맞은 볏단처럼 쓰러져 갔다/ 열다섯살 국군이 엄마를 부르며/ 하늘을 향해 눈을 뜨고 움직임이 없다/ 그 영령들이 안주할 곳이 없다면.’

윤한수(75) ‘6·25 참전소년지원병 중앙회’ 부회장 겸 사무총장이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순국 소년병들에게 바친 조사(弔詞)다.

그가 매년 이맘때 이처럼 가슴 절절한 조사를 쓴 이유는 어린 나이에 책 대신 총을 들고 전쟁터를 뛰어들었던 ‘전우’들의 희생을 기릴 제대로 된 추모시설이 없어 ‘떠돌이 위령제’를 지내는 현실이 너무도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난 17일 대구 남구 대명동 앞산공원 낙동강승전기념관 대강당에 마련된 임시제단 앞에서 열린 ‘6·25참전 순국소년지원병(2268위) 위령제’에서 이 조사를 낭독했다. 지팡이를 짚은 채, 또는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언덕길을 올라온 200여명의 생존 소년병들은 금세 눈시울이 붉어졌다.

윤씨는 전쟁발발 후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에서 비상소집을 해 달려갔다가 선생님의 훈시를 듣고 그 길로 자원 입대했다. 그는 당시 대구 계성중 3학년(15세)이었으며 징병관으로부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귀가를 권유받았다. 2대 독자로 병역면제 대상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에 학교장 추천서까지 첨부, 자원 입대를 관철시켰다. 그는 1사단 17포병대대 2중대 소속으로 영천·신령전투에 투입돼 105㎜ 포탄을 밤낮없이 날랐다. 낙동강 다부동전투, 평안북도 박천전투에 투입돼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1954년 5월 경기 연천 5포병 사령부에서 제대했다.

윤씨는 “전국 300여곳에 현충시설이 있지만 소년병 현충시설은 한곳도 없어 해마다 임시제단을 만들어 전사한 동료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며 “생존 소년병(4748명)들 역시 대부분 전쟁으로 학업시기를 놓쳐 소중한 꿈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평생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대구 = 박천학기자 kobbl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