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24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KT 미디어센터에서 직원들이 대표적인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인 인터넷 TV(IP TV)의 영상 송출시스템을 점검하고 있다. 곽성호기자

“경영환경에 큰 변화가 생겨날 것이다.”

미국 IBM과 유력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10월 세계 주요 통신기업 최고경영자(CEO) 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가운데 9명은 한결같이 이처럼 응답했다. 또한 10명 가운데 4명가량은 변화 속에서 생존할 수 있는 대비가 미처 안돼 있다고 인식했다. 놀랍게도 이같이 응답한 CEO 수는 2년 전에 비하면 두 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같은 결과는 단적으로 세계 통신산업의 현주소를 보여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시장 자체의 성장은 정체되고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는 지속되는 현재 상황에서 비용절감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통신기업들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 융합경쟁 시대를 대비하라 = 위기국면일수록 본원적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불황기 전략의 요체다. 통신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해외는 이미 ‘융합’의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됐다. 프랑스만 해도 통신·방송 융합을 대표하는 인터넷 TV(IP TV)의 강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 IP TV 업체 5강 가운데 3개 업체가 프랑스에 소속돼 있다. 이미 IP TV 이용자 수는 6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프랑스텔레콤의 경우 올 6월 말 기준 가입자 수가 192만여명에 이른다. 프랑스텔레콤은 전 세계 30개국에 유·무선 및 방송·통신 등을 아우르는 1억86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방한했던 프랑스 통신위원회 소속의 파트리크 로드 상임위원은 “프랑스의 경우 IP TV 시장에 활력이 넘친다”며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를 모바일로 조기 구현할 계획”이라고 자신한 바 있다. 프랑스텔레콤은 2004년부터 콘텐츠 전담조직을 설립, 적극적으로 투자를 진행해 왔다. 영화·스포츠 등의 콘텐츠 확충을 위해 직접 제작에 참여하거나 전문 업체와 연합했다. 또 지난해 7월에는 IP TV의 보완을 위해 위성방송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같은 해 11월엔 콘텐츠를 TV와 PC, 휴대전화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일종의 3스크린(Three Screen) 서비스인 ‘콘텐츠 에브리웨어(contents everywhere)’를 시작했다. 이 회사는 “올 상반기(1~6월) 주문형비디오(VOD) 판매 수가 전년동기 대비 무려 4배나 늘어난 1740여만 건에 달한다”고 말했다.

SK텔레콤 경영경제연구소의 김민영 박사는 “프랑스의 경우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하면서 동시에 IP TV 서비스를 그 위에 얹어 동시 판매하는 전략이 관련 시장의 조기 활성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며 “이제는 이를 3스크린 전략으로 확장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 해외 영토확장 ‘공세’= 일본 NTT도코모는 글로벌 경제위기에도 불구, 오히려 영토확장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엔고(円高) 덕분에 해외 투자 여력이 커진 데다, 글로벌 경기침체의 여파로 통신 주권에 대한 개발도상국의 민감도가 크게 약해진 틈을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NTT도코모는 지난 한해 동안 말레이시아 유모바일 지분 16.5%·방글라데시 텔레콤말레이시아인터내셔널 지분 30%, 인도 타타텔레서비시즈 지분 26% 등을 줄줄이 사들였다. 지난 수년 동안 해외투자 실패에 위축돼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달라진 분위기다. NTT도코모는 앞으로 해외 매출 비중을 5년 내에 5배로 확대, 10%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방침까지 세우고 있다.

이처럼 NTT도코모가 영토확장으로 다시 눈을 돌린 것은 세계 이통 시장 가운데 가입자가 가파르게 늘고 있는 유일한 곳이 개발도상국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현재 세계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전년동월 대비 6억5000여만명 늘어난 40여억명을 기록했는데, 가입자 증가분 대부분은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했다. NTT도코모를 비롯해 영국 보다폰이나 싱가포르의 싱텔 등 선발 주자들이 인도·아프리카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이유다.

NTT도모코는 또한 4세대(G) 이동통신 표준 경쟁과 관련, 유럽형의 롱텀에볼루션(LTE) 서비스를 오는 2011년 상용화할 채비를 하고 있다. 중국 차이나모바일, 미국 버라이존 등과 함께 모바일 브로드밴드 시대의 총아인 4G 선점 경쟁에 돌입한 것이다.

◆ 녹색혁명을 맞아 = 미국 오바마 정부는 최근 10년 동안 무려 1500억달러를 녹색산업에 투입하는 그린뉴딜 사업에 착수했다. 정보화혁명에 이어 녹색혁명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 AT&T 등 통신기업들은 이에 따라 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 사업에 발 빠르게 뛰어들고 있다. 미국은 이미 800만 가구에 스마트 계량기를 보급했고, 2015년까지 이를 5000만 가구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스마트그리드 구축에 45억달러(약 5조5000억원)를 투입하기로 했다.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