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17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빌딩 현대자동차 쇼룸에서 KT 직원들이 휴대전화로 차량을 원격점검하고 있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

통신산업이 서비스 업종의 울타리를 벗어나 국가 산업 전반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통신산업은 그동안 새로운 내수기반을 창출하고 휴대전화·온라인게임·포털 등 유관 산업의 발전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디지털 신경제의 총아’라는 위상에도 불구하고 국가 산업 전반의 지식화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제 역할을 충분히 다하지 못해 왔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이에따라 통신산업이 성장정체를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자동차·조선·건설·전력 등 이종산업과의 컨버전스(융합)를 확대하고 국가 산업 전반의 중추신경계 역할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문이다.

16일 오후 1시30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 인근 도로가. KT텔레매틱스(Telematics·차량무선정보서비스)팀의 박종일 대리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서 꺼내 단추를 여러 번 누르자, 길가에 정차된 검은색 승용차의 사이드미러가 펴지고, 차문의 잠금장치가 풀리면서 시동이 단번에 걸렸다.

박 대리는 “지난 6월17일 KT와 현대자동차가 휴대전화 원격진단·제어·안전·정보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공동 상용화했다”며 “휴대전화 분실사고를 대비, 원격제어시에는 먼저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이 서비스 가입자는 두 달여 만에 4000명가량으로 늘었다.

함께 차를 타고 광화문을 빠져나온 뒤 북악산 능선이 펼쳐진 북악스카이웨이로 향하자, 휴대전화 화면에 빨간색 숫자가 깜박이기 시작했다. 박 대리는 “매분회전수(RPM)와 운전속도를 체크해 경제운전지수를 나타내는 것”이라며 “녹색으로 바뀌어야 연료비를 아끼는 경제운전을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운전습관 확인도 가능하다. 차량에 부착된 진단기가 근거리통신(블루투스)을 이용해 휴대전화로 주행정보를 전달하면, 현대차 관제센터는 이동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이 데이터를 넘겨받아 급감속·급발진 횟수를 따져 본 뒤 안전운전지수를 산출한다. 게다가 차량 안의 에어백이 작동되면 관제센터에 자동으로 신호가 가고, 관제센터는 운전자와 연락이 안 되면 바로 119에 위치정보와 함께 구조요청을 하게 돼 있다.

이 같은 첨단 서비스가 가능한 것은 이종산업이 손을 잡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자 노력했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이 서비스에 사용되는 핵심 칩을 개발한 정보기술(IT) 전문업체인 컨피테크의 황보창환 사장은 “국내의 앞선 IT를 바탕으로 이종산업 간의 컨버전스를 가속화하는 것이 성장정체를 극복하는 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 자동차 산업 전반은 언뜻 보면 글로벌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휘청이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물밑에선 향후 주도권을 놓고 기싸움이 팽팽하다. 현대차가 이처럼 KT와 손잡고 경기침체에도 불구, 텔레매틱스 서비스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하는 한편, 이 모델을 해외로 이식하기 위해 지난 8월초 글로벌 텔레매틱스팀을 신설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글로벌 대표 브랜드로 도약하는 계기로 만들겠다는 각오가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자동차 산업은 이미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탈바꿈하는 추세여서 이 같은 이종산업 간의 협력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SK텔레콤도 지난 4월 휴대전화로 차량을 원격진단 및 제어할 수 있는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시연한 바 있다. SKT는 르노삼성 등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또한 KT는 현대중공업과 협력하고 있다. 오는 9월1일 상용화를 목표로 현대중공업과 울산공장에 ‘와이브로 조선소’를 구축하고 있다. 와이브로 조선소가 가동되면 도면의 수정 내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거나 각종 자재 이동경로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이종산업 공조 모델은 조선업계의 핵심 경쟁력인 선박 건조기간을 단축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