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위기를 한국 경제 내부의 힘을 키우는 기회로 삼기 위해선 부가가치가 높은 서비스산업의 육성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대표적인 서비스업종인 통신산업은 ‘성장 정체’의 늪에 빠져 갈수록 활력을 잃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의 극복과정에서 발휘한 저력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이에따라 문화일보는 통신산업의 역동성을 되살리기 위한 발전방안과 과제를 점검하기 위해 ‘다시 ‘다이내믹 통신한국’으로’라는 특별기획을 5회에 걸쳐 게재한다.

“과거 외환위기 극복의 일등공신은 정보기술(IT)산업의 핵심인 통신산업이었다. 통신산업 덕분에 내수가 진작됐고, 경제가 회복됐으며, 휴대전화 강국의 기틀이 마련됐다.”(이석채 KT 회장)

한국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1997년 12월~2001년 8월)를 탈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통신산업에 새로운 시대적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전례없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맞아 한국 경제에 대외 충격을 견딜 수 있는 탄탄한 내수 기반이 필요하며, 그 선봉에 통신산업이 나서야 한다는 것이 경제계의 강한 주문이다.

◆ 외환위기 극복 ‘공신’= 공교롭게도 외환위기 직전 상용화된 이동통신 분야는 당시 이같은 역할을 해낼 수 있는 저력을 확실히 입증했다.

SK텔레콤은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세계 최초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서비스를 상용화했으며, KT(옛 KTF)·LG텔레콤 등은 이듬해 합류했다. 이통산업의 경기부양 효과는 상당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따르면 당시 CDMA 상용화의 생산유발 효과는 125조원, 고용유발 효과는 142만명에 달할 정도였다. CDMA 상용화 덕분에 도약의 발판을 다진 한국 휴대전화 산업은 올 2분기(4~6월) 사상 처음으로 세계 시장점유율 30%를 달성할 만큼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했다. 휴대전화는 명실공히 한국 경제의 4대 간판 수출 제품이 됐다.

1998년 상용화된 초고속인터넷 분야 역시 한국 경제 회복에 크게 기여했다. 그 이듬해 37만명에 불과했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불과 3년 만인 2002년 1000만명 시대를 맞았다. 이 기간 설비투자 금액만 해도 11조원에 달했다. 초고속인터넷의 확산은 포털·게임·전자상거래 등 디지털 신경제를 창출하면서 침체된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 추락하는 IT강국 = 그러나 더이상 ‘IT강국’이라고 자부할 수 없을 만큼 한국 IT산업의 경쟁력은 추락하고 있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지난해 전 세계 66개국을 대상으로 한 ‘IT산업 경쟁지수’ 조사결과에 따르면 한국은 3위에서 8위로 5계단이나 떨어졌다.

이는 이동통신과 초고속인터넷 분야가 2005년 이래로 성장 정체에 빠져든 데다 그즈음 줄줄이 상용화된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인터넷 TV(IP TV)·와이브로 등 신성장 분야가 고사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올해 96%에 도달하고 성장률은 3.24%에 그칠 전망이다. 이통 보급률은 97%에 이르고 성장률은 3.5%에 머물 전망이다. 이 같은 시장포화에 따라 사업자 간의 비생산적인 가입자 쟁탈전만 반복되고 있다. 유선전화는 KT가 한 해 1조원씩 매출이 빠져나갈 것을 우려하고 있다.

2005년을 기점으로 상용화된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 가운데 인터넷 전화를 뺀 나머지는 모두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2005년말 상용화된 지상파DMB나 위성DMB는 각각 1200억원과 3000억원의 누적 손실을 기록하는 등 현상 유지도 급급한 상황이다. 한국 IP TV의 역사는 벌써 3년째에 접어들지만 현주소는 방송·통신 융합시대의 간판 주자라는 당초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케이블TV 가입자 수가 1500만여명인 데 반해 IP TV(실시간 기준) 가입자 수는 현재 60여만명 수준에 머물고 있다. 2005년 1월 사업자가 선정된 와이브로의 국내 가입자 수는 지난 6월말 현재 22만여명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이 주춤하는 사이에, 해외에서는 혁신으로 무장한 강력한 경쟁자가 출현하고 있다. 인터넷 전화 사업자인 미국 스카이프는 서비스 출시 5년 만에 전 세계 3억38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 세계 2위의 글로벌 통신사업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 통신산업, 역동성 회복해야 =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DC) 국가 가운데 한국의 IT 활용도는 꼴찌 수준”이라며 “앞선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높일 때”라고 한국 통신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이처럼 통신산업이나 한국 경제가 처한 고민을 일거에 해결하기 위해선 통신산업의 역동성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분석이다. 방송·통신 시장은 그 자체로 국내총생산(GDP)의 6%를 차지할 만큼 대표적인 서비스 산업일 뿐만 아니라 고용창출이나 전·후방 연계효과에서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아울러 통신산업은 지식경제 시대의 총아로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관범기자 frog72@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