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당시 행적이 서거 5일 만에야 드러나게 된 것은 경호 실패 책임을 회피하려 거짓말을 한 경호관과 부실수사로 일관한 경찰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이는 경호 및 경찰 관계자들의 안이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으로, 이들 기관의 위기 대응능력에 회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찰은 서거당일인 23일 오전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봉화산에 오른 이병춘 경호과장의 진술에 의존해 노 전 대통령이 오전 6시20분 부엉이바위에 도착했으며 20여분간 이 과장과 이야기를 나누다 6시45분 투신했다고 밝혔다. 당시 이 과장은 노 전 대통령이“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말하고 시선을 돌린 사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고 진술했다.

노 전 대통령 부모의 위패가 모셔진 정토원 방문 의혹 등 새로운 사실이 속속 드러날 때도 노 전 대통령과 나눴다는 마지막 대화에 대한 이 과장의 진술에는 변화가 없었다. 경호 대상을 놓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건 당일 노 전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거짓말로 일관한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이 일부러 이 과장의 주의를 돌린 것이라면 경호 실패 책임은 상당부분 덜어지지만, 이 과장이 경호 대상인 노 전 대통령을 놓쳤다면 책임을 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경찰의 부실수사도 도마에 올랐다. 경찰은 전직 대통령 서거라는 중대사안이 발생했음에도 청와대 경호실의 폐쇄회로(CC)TV의 화면이나 교신 내용 등을 충분히 조사하지 않았다. 당시 등산객이 있었다는 것을 뻔히 알고서도 목격자 조사 역시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 과장이 노 전 대통령이 정토원 근처에 간 사실을 밝혔음에도 경찰은 1차 수사결과 발표에 이같은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사건발표 당시 경찰은 기자들의 정토원 방문여부를 묻는 질문에 “(이 과장으로부터) 정토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정토원 방문 의혹이 보도된 뒤에야 “이 과장으로부터 ‘정토원까지 갔다가 부엉이바위로 되돌아 내려왔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나 특별한 의미가 없는 것 같아 (수사 발표에서)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과장의 사건 초기 진술과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에게 한 설명이 다른 것으로 드러나는 등 부실수사 논란이 확산되자 ‘(노 전 대통령을)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는 무전교신 내용을 확보, 사건 당시 이 과장이 노 전 대통령 근처에 없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경호관의 거짓진술과 경찰의 부실수사로 국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 행적을 제대로 아는 데까지 5일이나 걸렸다.

김해 = 이용권기자 freeus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