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빙상계엔 ‘피겨 맘’이라는 용어가 있다. 피겨 선수인 딸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억척 어머니들’을 일컫는 말이다. ‘피겨퀸’ 김연아(19·고려대)가 2009세계피겨선수권에서 정상에 오르며 어머니들의 ‘극성모정’이 다시 화제다.

김연아가 세계 피겨계를 평정하기까지 ‘으뜸 도우미’는 단연 어머니인 박미희(52)씨였다. 박씨는 1996년 김연아가 피겨에 입문한 이후 ‘고난의 행군’을 계속해왔다. 김연아는 주니어시절 아버지인 김현석씨가 사업에 어려움을 겪으며 한때 은퇴까지 고려했었다.

이 시절에 대해 박미희씨는 지난해 펴낸 책 ‘아이의 재능에 꿈의 날개를 달아라’에서 김연아가 천재로 주목받던 주니어 시절, 훈련비를 감당하기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아 화제가 됐었다. 박씨는 김연아의 선생님이자 친구였고 매니저이면서 요리사다. 김연아가 외신들을 상대로 능숙하게 영어로 인터뷰할 수 있는 것도 훈련장을 오가는 시간에 박씨가 영어 테이프를 끊임없이 듣도록 했기 때문이라고 최근 알려져 눈길을 끌었다.

비록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131.50점을 받아 17위에 머물렀지만 김나영(19·인하대)의 어머니인 신금숙(44)의 ‘극성 모정’도 피겨계엔 유명하다. 김나영은 이번 대회에 앞서 문화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엄마가 훈련이나 대회 출전 등 스케줄을 다 관리해주고 있다. 매니저나 마찬가지”라며 “부모님의 관심과 후원이 저의 최고의 기술”이라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김나영이 피겨를 시작한 것도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신씨는 안짱다리를 고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얘기에 6살난 딸의 손을 잡고 스케이트장을 찾았다.

‘얼짱 피겨선수’로 알려진 신나희(19·대구 계명대)의 어머니 임미숙(43)씨는 비록 ‘매니저’처럼 딸의 곁을 지키진 못하지만 뜨거운 모정은 어느 ‘피겨 맘’ 못잖다. 임씨는 대구 칠성시장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며 한번에 3000만원 이상 드는 딸의 전지훈련비를 직접 조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코치 장선미씨는 “스케이트 부츠 마련부터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상황에 대해 항상 어머니가 미안해한다. 그래도 항상 급전이라도 마련해 전지훈련비를 대는 모습을 보면 눈물겹다”고 말했다.

한편 신나희의 가정 형편에 대해선 지난해 ‘사미인곡’이란 방송프로그램에 소개돼 화제가 됐었다. 피겨 선수들이 은반 위에서 ‘전쟁’을 치른다면 그들을 지키는 어머니들도 무대 뒤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세계가 한국피겨를 주목하는 것도 ‘자랑스러운 어머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경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