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임정현기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2005년 9월 출범했다. 전신(前身)인 문예진흥원이 관료 위주의 조직체로, 문화예술인들의 독립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줄기차게 제기되자 위원회가 꾸려진 것. 각 장르를 대표하는 10명 위원과 위원장 체계를 갖춰, 문예진흥기금의 배분 등 민감한 사안들을 다뤄왔다. 위원장과 위원의 임기는 각 3년. 지난해 9월 제2기 위원회가 출범했다. 하지만 위원장은 그동안 두 차례 갈려 현재 세 번째 위원장으로 미술평론가인 오광수(71)씨가 들어선 상태다.

그렇다면 왜 2기 위원회에 세 번째 위원장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위원장이었던 김병익씨와 김정헌씨가 각각 중도 사퇴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헌 위원장은 ‘해임’이라는 극약 처방을 받아야 했다.

이로 인해 지난해 12월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오 위원장은 지난 12일 임명장을 받고 정식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한마디로 위원회 출범 이후 어수선한 세월이 계속됐다는 이야기다. 2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문화예술위원회 본관에서 오 위원장을 만났다.

―평생을 미술 평론가로, 또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등 미술행정 분야에서 일해 오셨는데 전반적인 문화예술행정의 수장을 맡으신 소감은.

“맞습니다. 평생을 미술 쪽으로만 외골수로 살아왔는데 문화예술 전반을 다루는 위원장을 맡아 전체를 커버해야 하니 벅찬 일이지요. 하나의 시험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장르마다 위원들이 계셔서 그들에게 노하우를 배워가면서 해나가려고 합니다. 까다로운 미술행정을 다뤄본 경험이 있어 사전조율에 있어선 나름대로 익숙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창작 지원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해나갈까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오 위원장의 말은 겸양이 아니다. 어쩌면 전반적인 문화예술행정보다 더 까다로운 것이 미술행정이다. 문학이나 미술 같은 경우 작가들은 모두 독자적으로 일한다. 좋게 말하면 자존감이 있는 것이고, 심하게 표현하자면 외고집의 인생을 산 사람들이다. 그런 미술계에서 부동의 자리를 지켜온 오 위원장으로선 각 장르를 대표하는 위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지도 모른다.

―지난해 12월부터 위원장 직무대행으로 2개월 넘게 업무를 맡아 오셨는데, 가장 시급한 현안은 무엇입니까.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직접 해보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지요. (위원회) 밖에 있을 땐 ‘왜 저렇게 하느냐’며 비판적인 시각을 갖기가 쉬운데 실제 들어와 일해 보니까 너무 비판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위원회가 만들어진 원래 취지는 문화예술 창작지원입니다. 한데 의욕적으로 일하다보니까 자체 기획사업이 너무 많아요. 밖에서도 비판하는 사안이지만 좀 방만하다는 판단입니다. 물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는 일에 대한 의욕이 앞서 그런 거예요. 미술관이나 극장 등 시설운영에서 대여체제로 가야 하는데, 욕심을 부리다보니까 자체기획이 많아지는 거지요. 자체기획도 지원사업의 일종이긴 하지만 창작지원이란 애초의 출발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문화예술위원회의 예산은 지난해 832억원, 올해 760억원이다. 이중 대부분을 문화예술 지원사업에 쏟아붓고 있다. 돈이 오가는 일이다보니 잡음이 끊길 리 없다. 전임 위원장 모두 직간접적으로 이와 연관돼 자진사퇴와 해임의 길을 밟았다. 오 위원장은 전임 위원장들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는 질문에 극도로 말을 아끼면서도 “기금 잠식 부분은 있어선 안될 일”이라며 “일을 방대하게 펼치다보니 일어난 현상이라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임 위원장들이 임기를 못다 채우고 물러난 데 대해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위원회 자체의 문제라고 본다”며 “장르 이기주의라든지 편파지원 문제 등은 2기 위원회에 들어와서 상당히 해소됐다”고 밝혔다. “어떤 측면에선 희생양”이라는 말도 흘렸다. 보다 정확히 언급해달라는 요청에 “문예진흥원 체제에서 위원회 체제로 바뀌면서 벌어졌던 과도기적 현상 아니겠느냐”고 평가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하에서 위원회가 행했던 지원사업에 대해선 비판의 날을 세웠다. 한마디로 “균형감각을 잃었다”는 것. “예를 들어 예총과 민예총의 구성인원을 보면 약 3대1의 비율로 예총 소속 인원이 많습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하에선 민예총에 대한 지원이 압도적으로 많았지요. 적어도 (민예총 대 예총 지원이) 6대4 정도는 됐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오 위원장은 이어 “문화예술이 정치적 논리에 너무 휘말리면 살아남을 수 없다”며 “이는 역사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라고 못박았다. 아무리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하더라도 예술가가 권력에 너무 가까이 갈 경우 치명상을 입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오 위원장의 어조는 단호했다.

오 위원장은 한국 미술평론의 1세대로 꼽힌다. 196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분야에 당선돼 평론활동을 시작한 오 위원장은 1965년 처음으로 만들어진 미술평론가협회에 가장 젊은 나이로 가입,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는 등 그동안 명실상부한 한국 미술평론계의 거장 역할을 해왔다.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한 오 위원장이 평론으로 돌아선 계기가 궁금했다. 이에 대해 그는 “대학시절 시작(詩作)에 몰두하는 등 평론에서도 습작과정이 있었다”며 “창작을 하면서 이론적 측면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위에서 ‘창작보다 비평으로 가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갈등이 없을 수는 없었던 것. “당시 (평론을 해서는) 먹고사는 문제도 만만찮았다”며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회고했다.

오 위원장의 부인은 서양화가 차우희(64)씨.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던 1960년대 초반에 당시 중앙대생이었던 부인을 만났다. 이화여대 입구에 있던 ‘파리다방’에서 소설가 이제하씨의 소개로 첫 인사를 나눴다.

이렇게 만난 오-차 커플은 부인이 졸업하자마자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차 화백은 독일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다. 독일의 한 화랑에 전속된 화가이기 때문이다.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차 화백은 독일을 드나들었다. ‘경상도 사나이’인 오 위원장으로선 부인의 외유(外遊)가 만만찮은 문제였을 것이다.

“주위 남성분들에게서 온갖 비난을 들었습니다. ‘남자 망신 다 시킨다’는 거지요. 요즘으로선 말도 안 되는 얘기지만 그땐 그랬어요. 반대로 주위 여성분들에게선 ‘조선에 없는 남자’라는 찬사도 쏟아졌어요.”(웃음)

국내 미술평론계의 현 수준과 문제점을 지적해달라는 주문에 오 위원장은 “요즘 평론가들은 전문화돼 있고 비평도 장문에 심도있는 글을 생산하고 있다”며 “하지만 너무 어렵게 쓰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라고 말했다. “젊은 평론가들이 작가와의 만남 등이 부족하다보니 현장경험이 축적돼 있지 않은 것도 안타까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나도 젊었을 땐 (평론을) 어렵게 썼는데, 나이들면서 글이 쉬워지더군요. 비평의 기능 자체가 일반 대중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매개하는 것이라면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했다.

미술전공을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주문에 오 위원장은 “창작의 기본은 상상력”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현 주입식 교육은 지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당한 미술지망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시들어가는 것도 “틀 속에 갇혀 기술을 답습하기 때문”이라는 것.

“폭넓은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미술지망 청소년들이라면 연극, 영화, 문학 등 타 장르의 예술을 많이 접해야 합니다. 기술보다 다양한 문화적 교양을 갖춰야 한다는 거지요. 그런 점에도 문화예술위원회가 담당해야 할 몫이 분명히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을 위한 다양한 발표 자리를 만들어 나가야 하고, 나아가 청소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장을 펼쳐야겠지요.”

김영번기자 zerokim@munhwa.com

오광수 위원장은…
▲1938 부산 출생 ▲1962 홍익대 회화과 졸 ▲1963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부문 당선 ▲1967 ‘공간’ 편집장 ▲1973~1983 국민대·홍익대 강사 ▲1979~1983 국립현대미술관 전문위원 ▲1979 브라질 상파울루비엔날레 심사위원 ▲1985 프랑스 칸국제회화제 한국대표 ▲1989~1991 ‘현대미술’ 주간 ▲1991~1999 환기미술관 관장 ▲1992~1997 한국미술평론가협회장 ▲1997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최고관리자 ▲ 1998 광주비엔날레 전시총감독 ▲1998 한국미술협회 상임고문 ▲1999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상임고문 ▲1999 국립현대미술관장 ▲2000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2004 중앙대 예술대학원 초빙교수 ▲2008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2009~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