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태백시 하장면을 지나는 424번 지방도로에서 만난 ‘눈 나라’의 풍경. 가까이 서 있는 겨울나무 가지에는 눈꽃이 피어났고, 멀리 소나무들은 힘겹게 눈을 이고 서 있다. 산자락을 휘감는 푸른 안개도 이 아름다움에 가세했다.

밤 사이에 내린 눈으로 강원도 오지의 산간마을이 환한 눈나라로 변했습니다. 시원스레 가지를 뻗어 올린 금강송이며 크리스마스트리를 연상시키는 전나무, 그리고 잎을 다 떨구고 펜화처럼 서 있는 낙엽송 가지에도 소복이 흰 눈이 덮였습니다. 마당에 내건 빨래가 꽝꽝 얼어 있는 산골마을 외딴집의 굴뚝에서는 아침을 짓는지, 푸른 연기가 피어오릅니다. 가마솥을 얹은 아궁이에서 잘 마른 솔가지가 타닥거리며 타오르고 있을 테지요.

강원도 산간마을의 설경은 도회지에서 보는 그것과는 참 다릅니다. 도회지의 눈은 축축한 습기로 질척거리지만, 산간마을의 눈은 건조하게 뽀드득거립니다. 순백의 눈으로 가득한 산에 둘러싸인 풍경은 화려하기도 하고 포근하기도 합니다. 산간마을에 포근히 내린 눈은 귀로도 느낄 수 있답니다. 소복이 쌓인 눈이 소리를 다 빨아들여 참으로 고요하지요. 간혹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뭇가지가 부러져 정적을 깨면 놀란 꿩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오릅니다.

강원도 산간에 대설주의보가 내려진 날, 눈 구경을 떠나봤습니다. 눈이라면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드는 강원도도로관리사업소의 제설 담당 직원들에게 물어 행로를 잡았습니다. 겨우내 ‘눈과의 전쟁’을 치르는 이들은 “눈이라면 지겹다”고 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담아놓은 ‘아름다운 설경’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설경을 찾아서 424번 지방도로를 따라 강원도 정선을 지나고 태백과 삼척의 산간 오지마을을 거쳐 가는 길입니다. 이 길에서 만난 설경은 참으로 아름다워서 ‘눈 나라로 가는 길’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답니다.

사실 강원도 산간마을로 눈 구경 가는 일은 웬만해서는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거리가 먼 것이야 그렇다고 쳐도, 눈이 쌓인 도로를 달리다 행여 미끄러지거나 사고라도 날까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잘 겨눠서 떠나면 괜찮을 듯 싶었습니다. 워낙 눈이 많은 곳이라 제설작업이 번개처럼 이뤄지는 데다, 차량 통행이 빈번하지 않아 내린 눈이 빙판이 되는 일도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쪽으로 눈 구경을 떠나려면 날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강원도 산간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지만, 산 아래쪽은 포근한 영상의 기온을 보이는 날을 짚어 찾아가는 것이 요령이지요. 마침 ‘눈 나라로 가는 길’을 찾아간 것도 이런 날이었습니다. 강원도 정선까지 가는 길에는 간간이 비와 진눈깨비가 흩날렸고, 태백 쪽으로 산이 깊어지며 비가 눈으로 변했습니다. 도로는 빠른 제설과 영상의 기온으로 이내 녹아내렸지만, 길옆의 깊은 산과 숲은 온통 눈으로 가득했습니다. 산에는 낮은 구름들이 척척 걸려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냈고, 흰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는 산골 초등학교 분교 교정에는 아이들이 눈을 굴려 만든 눈사람이 하교 후의 학교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길에서는 정선을 휘감아 동강이 돼서 흘러가는 조양강과 동대천의 물줄기를 내려다볼 수도 있고, 몰운대 벼랑 끝에서 가지를 온통 뒤틀고 서 있는 고사목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정선 소금강의 빼어난 암봉의 경치도 좋고, 화암약수의 탁 쏘는 물맛도 빼놓을 수 없지요. 눈발이 흩날려 준다면 좋겠지만, 혹 눈이 내리지 않더라도 어떻습니까. 이렇게 깊은 산중으로 들어 청량한 겨울 찬 공기를 호흡한다는 것만으로도 424번 국도를 따라가는 길은 나무랄 데 없는 여정이지요.

정선·태백·삼척=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굵은 눈발 속에서 정선군 동면 백전리의 물레방아를 찾아가는 길에서 마주친 산촌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