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아붙으면서 부실기업 정리 등 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채권기관인 금융권이 부실기업을 퇴출시키는 데 극도로 몸을 사려 ‘옥석 가리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기업지원을 강화하라는 정부와 여론의 압력이 거세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아졌고, 부실기업에 대한 대출 회수에 나설 경우 ‘비오는 날 우산을 뺏었다’는 비난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과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감시해야 할 금융당국까지 나서 기업대출 확대를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13일 금융권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내수부진과 수출 둔화 등 경기침체로 기업 부실 규모가 커지고 있으나 은행들은 부실기업을 퇴출시키는 데 극도로 몸을 사리고, 금융당국 역시 부실기업 정리에 적극 나서지 않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재 금융기관들이 모든 건설사를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는 대주단(채권단) 협약. 이 협약을 적용받는 업체에 1년간 채권행사 유예와 함께 신규자금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 이를 통해 구조조정에 들어간 회사는 지난 4월 단 1곳에 그쳤다. 굿모닝신한증권 보고서를 보면 신용등급 BBB- 이상 41개 건설사의 경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를 비롯한 수정 부채비율이 429%에 달할 정도로 재무건전성에 ‘이상 신호’를 보내고 있는 데도 협약 가입을 하지않고 버티고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평소라면 퇴출됐어야 할 기업이라도 최근 기업 지원을 강화하라는 정부의 압력으로 눈치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일시적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을 살리는 게 결국 은행 건전성에 도움이 된다”며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은 퇴출시키고 그렇지않은 기업은 지원과 함께 구조조정을 병행하겠다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부의 가장 큰 고민은 건설사들이 부도를 내고 쓰러질 경우 내수경기와 고용 사정이 악화되고, 이는 전체 금융권 부실로 이어지는 등 파급효과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퇴출돼야 할 한계기업을 계속 지원하는것은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워, 위기의 수위를 키울 수 있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보다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양수기자 ys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