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자연으로 갈아입고 바람앞에 서다 경남 합천의 작은 폐교 운동장에 자연의 색을 입힌 옷감들이 아름답게 널려 있다. 천연염색은 김씨 부부가 농촌의 소득 증대와 장애인 예술학교를 만들기 위한 꿈의 실현을 위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작업이기도 하다.

“조급한 마음에 낮에는 일만하고 밤이 되면 별들과 잠깐 눈인사를 나눈 뒤 잠을 청하곤 했습니다. 연고도 없는 낯선 타향에 정착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온 세월이 벌써 5년째 입니다.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러나 꿈이 있기에 늘 행복합니다.”

장애인 예술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김경숙(50·회몽예술원 원장)씨의 소박하면서도 커다란 꿈 이야기다.

경남 합천의 황강을 따라 굽이굽이 돌다보면 이미 오래 전 문을 닫은 폐교를 만날 수 있다. 그 곳에서 김씨는 ‘천연염색과 규방공예’의 편집장이자 남편인 강민진(50)씨와 함께 옷감에 물을 들이고 있다. 천연염색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자 농촌을 살릴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가 도시의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농촌 마을에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이었다. 귀농의 터전을 잡기 위해 전국에 흩어져 있는 폐교를 찾아 발이 불어 터지도록 헤맸다. 그렇게 해서 일흔한 번째 만난 학교가 현재의 봉산면 계산리 폐교부지. 그러나 마을 주민들과의 만남은 이들에게 더욱 뼈아픈 고통을 안겨 주었다.

외지인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경계심은 질시와 비난으로 이어지곤 했다. 식수를 받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사건건 시비가 생겨났다. 온갖 굴욕을 참고 견디느라 남편 강씨는 다섯 개의 생 이가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농촌을 살리는 꿈을 찾아 나선 이들 부부의 진심에 마침내 마을 사람들도 감동하고 말았다.

본래 몸이 불편했던 김씨는 수도원 생활과 함께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여러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장애인들의 경우 제대로 된 직장에서 경쟁도 불가능하고 설사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란 거의 전무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예술 분야에서는 불가능도, 정년도 없다. 그래서 그는 장애인들에게 예술의 혼을 불어 넣어 주자고 결심했다. 장애인들을 위해 그들이 스스로 자활을 할 수 있는 교육시설을 머릿속에 그렸다. 장애인 예술학교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이 경제적인 자립이었다.

김씨와 남편은 폐교에 터를 잡자마자 자신들부터 자활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온갖 일을 다 경험했다. 콩 농사부터 허브, 야생화, 목공예, 천연염색 등 소득을 올릴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마다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며칠 혹은 몇 달, 길면 1년 남짓의 세월을 같이 동고동락하며 생활했다.

이렇게 해서 얻은 결론은 바로 ‘천연염색’이었다. 힘들고 어려운 농촌 현실에서 천연염색과 이를 활용한 ‘규방공예’를 작품과 상품으로 내놓았을 때 이것이 곧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는 확실한 믿음을 갖게 되었다. 5년여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전국적으로 뜻을 같이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천연염색은 자연 속에서 얻어지는 각종 식물의 잎과 줄기, 꽃, 열매, 뿌리 그리고 황토나 조개 등을 이용해 자연 그대로의 대상에 자연 그대로의 색을 입히는 작업이다. 이는 가장 친환경적인 것으로 고향 할머니의 미소처럼 따뜻하고 친근감을 주는 자연의 색이다. 김씨 부부에게 있어 천연염색은 그들이 소망했던 꿈으로의 여행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꿈이라도 노력 없이는 그 꿈을 이룰 수 없다. 그동안 너무나 힘들고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간절한 꿈을 소원하며 참고 버텨왔다. 지금까지는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도 그 꿈의 실현을 위해 더욱 정성을 다할 것이다. 그리고 기다릴 것이다. 꿈으로의 긴 여행에 동참할 소중한 사람들을 그리며….

사진·글 = moonpark@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세상 하나뿐인 문양 나무조각을 천에 묶어 염색을 하면 천연염색된 천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독특한 모양의 무늬가 만들어진다.

이미지 크게보기화려하고 자연스럽게 천연염색에 있어 자연스러우면서도 다소 화려한 색상을 얻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염색을 하기도 한다.

이미지 크게보기정성에 또 정성을… 강민진씨가 옛 선인들이 천연염색을 할 때 사용했던 문양의 복원을 위해 서각공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사랑 나누듯 염색기술도 나눠요 !” 김경숙(왼쪽)씨가 각종 천연염료가 잔뜩 쌓여 있는 작업장에서 염색을 익히러 온 주민들에게 염색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미지 크게보기“우리의 길 후회 없지 ?” 회몽예술원 김경숙(오른쪽) 원장과 남편 강민진씨가 자신들이 직접 자연의 색을 입힌 천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환하게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