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에는 “경락은 전신, 즉 근육과 내장, 뼈, 심지어 손톱 및 머리카락까지 뻗쳐 있지 않은 곳이 없으며 이를 통해 ‘기’(氣)가 흐르기 때문에 인체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소광섭 서울대 교수가 9일 입증했다고 밝힌 ‘봉한학설’은 이러한 ‘기’의 개념을 과학적으로 확인한 최초의 작업이었다.

한국과학사를 전공한 김근배 전북대 교수에 따르면 60년대 북한에서 이 학설을 발표했던 김봉한은 1916년 서울의 약제상 집안에서 태어나 경성제대(옛 서울대) 의학부를 졸업한 뒤 한국전이 발발하자 월북했다. 북한에서는 평양의대 생리학강좌장, 경락연구원 원장 등을 역임하며 ‘최고의 의학자’로 활약한다. 당시 북한은 한의학을 ‘사회주의 과학’으로 인정하며 경락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막대한 투자를 했다. 1961년부터 5년간 그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경락에 관한 5개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 논문에서 그는 경락체계와 산알학설로 이뤄진 ‘봉한학설’을 제시했다. 즉 경락의 존재 양태를 실제로 세밀히 밝혔고 그 작동이 DNA로 구성된 미세 입자인 산알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봉한관을 염색해 그 실체를 확인했던 이 연구는 생물학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올, 다윈의 진화론에 버금가는 과학성과로 여겨지며 노벨 과학상을 수상받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의 논문은 세계 주요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그러나 봉한학설과 김봉한은 1965년 이후 갑자기 사라지게 됐다. 그의 후원자였던 한 권력자가 숙청을 당하면서 함께 정치적인 숙청을 당한 것이다. 40여년간 묻혔던 봉한학설을 독자적인 혈관 염색기술을 통해 재확인한 소 교수는 “제3의 순환계를 발견한 점은 해부학 분야에서 혁신적인 일”이라며 “또 혈관 속에 봉한관이 있고, 그 안에 산알이 흐른다는 점은 서양의학계에서는 상상조차 못한 사실”이라고 밝혔다. 소 교수는 특히 “산알은 세포재생의 역할을 하며, 현대의학적 용어로는 ‘성체줄기세포’의 씨앗이라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질병치료에 획기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소 교수팀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물리학부와 독일의 국제 생물물리 연구실과 봉한관의 세부 구조 및 물리적 특성에 대한 공동연구를 할 계획이다. 소 교수는 1968년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1974년 미국 브라운대에서 양자장론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을 이끌며 한의학의 과학적 입증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999년에는 교육부의 한국두뇌(BK)21지원을 받았으며, 2003년부터 과학기술부의 연구비 지원을 받아 오고 있다. 저서로는 대통일이론, 물리학과 대승기신론이 있다.

이승재기자 leesj@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