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이승일 한국은행 부총재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로3가 한은 기자실에서 고액권 지폐의 도안 인물을 발표하고 있다. 김동훈기자

논란을 거듭해온 고액권 도안인물 선정작업이 결국 김구와 신사임당으로 일단락됐다. 김구는 독립애국지사, 신사임당은 여성·문화예술인으로서의 대표성을 감안한 결정이었다는 게 한국은행의 설명이다. 하지만 인물 선정과정에서 보여준 한은의 우유부단한 행태는 이해단체간 갈등을 더욱 부추기면서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의 경과는 = 한은은 지난 5월2일 고액권 발행 계획을 발표한 후 6개월여에 걸쳐 선정작업을 진행했다.

5월21일 고액권 초상인물 선정을 위해 한국은행 부총재를 의장으로 역사학자, 철학자, 분야별 전문가들로 구성된 화폐도안 자문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자문위원회는 각자의 전문성과 식견에 따라 후보를 추천하고 이를 토대로 20명을 선출한후 이를 토대로여론조사와 전문가의견조사 등을 거쳐 10명으로 압축했다. 이후 국민의견접수창구를 통해 광개토대왕 단군 등에 대한 추천이 있었지만 한은은 막판 김구 신사임당 안창호 장영실 등 4명으로 후보를 좁힌 후 결국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최종 2명을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한은은 이해단체들의 힘에 떠밀려 당초 예정보다 한달가량 늦게 선정결과를 발표하게 됐다.

◆김구는 예견, 신사임당은 유관순 배제의 결과(?) = 사실 김구의 선정은 처음부터 예견됐다. 김구는 현 정권의 실세인 ‘386그룹’이 정권초부터 주도적으로 밀어붙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소식통은 “고액권 화폐도입 결정이전부터 현 정권 실세그룹에선 김구를 화폐도안인물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진행되긴 했지만 이같은 ’보이지 않는 힘’은 화폐도안 자문위원회나 정부와의 협의 등 공식적인 의사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구가 일찌감치 낙점되면서 유탄은 유관순에게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승일 부총재는 지난 8월 기자와 만나 “두명을 모두 독립투사로 선정할 수 없는 만큼 한명이 독립투사로 선정된다면 다른 한명은 배제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유관순이 제외되면서 자연스럽게 남은 한 자리는 여성후보로서의 대표성을 지닌 신사임당에게 돌아간 것으로 분석된다.

신사임당은 현행 5000원권에 아들 이율곡이 들어가 있는데다 현대적 여성상에 맞지 않는다는 여성단체의 비판으로 끝까지 심사위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는 후문이다.

◆2009년 상반기 유통 = 한은은 고액권 앞면에 들어갈 도안인물이 확정된 만큼 뒷면에 배치될 보조소재를 올해말까지 선정할 예정이다. 시안이 확정되면 한은은 조형화 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30여개의 시판을 제작한후 1년여에 걸쳐 화폐 디자인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작업을 모두 마치면 정부승인과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고액권 디자인은 최종 확정되고 2009년 상반기부터 신종 고액권은 본격적으로 시중에 유통될 예정이다.

송길호기자 khs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