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발행 사건과 관련해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허태학, 박노빈 전·현직 사장에게 2심에서도 유죄가 선고됐다. 검찰은 그동안 유죄 판결이 날 경우, 이건희 삼성 회장을 소환조사해 그룹 차원의 공모 여부를 밝히겠다는 입장을 표명해왔기 때문에 사건의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고법 형사5부(조희대 부장판사)는 29일 에버랜드 CB를 저가에 발행한 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장남 재용씨에게 변칙증여한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 위반)로 기소된 허씨와 박씨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96년 10월 30일 CB를 발행하기로 한 이사회 결의는 애당초 무효이기 때문에 이사 의무를 위반한 피고인들의 배임 혐의가 인정된다”며 “이 부분에 대한 원심 판단은 유효하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고 CB 발행 당시의 이사회 결의를 무효로 돌릴 경우, 재용씨가 보유한 지분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법적 논란이 불가피하며 삼성 지배구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삼성 에버랜드 CB 저가 발행사건은 29일 항소심 선고가 이루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검찰에 고발된 지 7년, 기소 후 3년6개월 동안 주임검사가 12차례나 교체됐고, 1심 재판부는 2차례, 항소심 재판부도 3차례나 바뀌었다. 1심 재판부는 2005년 10월 ‘CB 발행에 의한 회사의 손해가 인정된다’면서도 ‘이재용씨 등이 취득한 재산상 이익을 구체적으로 산정할 수 없다’며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만 인정했다.

당초 항소심 선고는 지난 1월18일 내려질 예정이었으나, 선고 공판을 이틀 앞두고 공소장 변경 여부를 둘러싼 논란으로 갑자기 심리가 재개되는 등 진통을 겪었다.

재판부는 전환사채 배정 이후 이사의 의무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공소장을 변경하자고 했으나 검찰은 끝내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를 강조할 경우, 허·박씨 유죄 입증에 유리해지더라도 향후 이 회장 등 ‘몸통 수사’에 불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허씨와 박씨는 1996년 11월, 당시 비상장된 삼성 에버랜드의 전환사채 99억원어치를 발행, 이 중 기존 주주들이 실권한 96억원 상당을 재용씨 남매에게 주당 7700원에 배정해 회사에 969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2003년 12월 기소돼 1심에서 각각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과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김백기기자 bki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