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노란 유채밭을 배경으로 반월성을 따라 아름드리 벚나무가 연분홍 꽃을 화려하게 터뜨렸다. 봄꽃의 화려한 풍경에 취해 자전거를 타는 젊은 연인들이 발길을 멈춘다. 이번 주말이면 유채의 노란색이 더 짙어지고, 벚꽃도 더 화사해질 것이다.

풍경 #1

신라의 42대 왕인 흥덕왕을 아십니까. 먼저 세상을 떠난 왕비를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던 신라의 왕을 아십니까. 죽은 뒤에도 ‘왕비와 합장을 해달라’며 유언을 남겼던…. 1200년의 세월을 건너온 흥덕왕릉이 바로 경주의 안강에 마치 ‘버려진 듯’ 쓸쓸하게 있습니다. 흥덕왕릉은 숨이 막힐 정도로 꽉 들어찬 소나무숲이 압권입니다. 아무리 감성이 무딘 사람이라도 이 솔숲에 들면 탄성을 뱉어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무덤 주위에 심은 소나무를 ‘도래솔’이라고 부르지요. 푸른 새벽, 구불구불 자라난 그 ‘도래솔’ 앞에 섰습니다.


풍경 #2

경주의 반월성 주변에는 봄을 알리는 유채꽃이 샛노랗게 피어났습니다. 반월성 기슭으로는 벚꽃도 화려한 연분홍색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유채꽃 사이로 난 길에는 연인들의 ‘까르르’ 웃음소리가 넘쳐납니다. 봄향기에 취하고, 사랑에 취한 젊은 남녀들이 자전거를 타고 고도의 옛길을 달립니다. 팽팽한 근육과 건장한 다리로 페달을 꾹꾹 밟으면서…. 수천년의 세월에 이쪽이나 저쪽에서도 사랑의 모습이야, 뭐 그리 달라졌겠습니까. 끝간데 없는 유채밭에서 설레고, 가슴떨리고, 아릿아릿한 사랑이 ‘봄의 느낌’과 참 닮아있다고 새삼 생각해봅니다.

경주는, 누구든 한 번쯤은 가봤을 여행지입니다. 수학여행의 단골 목적지였던 곳.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불국사와 다보탑, 석가탑, 석굴암, 그리고 첨성대쯤은 눈감고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인 얘기지만, 까까머리 시절 수학여행으로 처음 가봤던 경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불국사를 오르는 길에서는 사진으로만 보던 유적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가벼운 흥분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직접 마주한 다보탑과 석가탑의 왜소함이라니…. 불국사를 돌아나오면서 왠지 속은 듯한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 세 번 경주를 다시 만나면서 어떤 때는 아늑한 분위기에 매료되기도 했고, 유려한 기와의 선이나 도시안에 깃든 왕릉의 위용에 마음을 뺏기기도 했습니다. 남산에 올랐다가 경주로 들어섰을 때는 유물들로 가득한 박물관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 느낌도 참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발 닫는 곳마다 왕릉과 불탑들이 늘어서 있는 ‘황홀한 유적의 바다’ 경주. 그 경주가 가장 아름다울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석굴암에서 경주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에 벚꽃들이 활짝 피어 연분홍 꽃잎을 날리고, 보문호 주변에 심은 축축 늘어진 수양 벚나무에도 벚꽃들이 팝콘처럼 매달리면서 경주는 ‘최고의 시간’을 맞고 있습니다.

경주는 또 숨겨진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흥덕왕릉이 그렇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최부잣집도 그렇습니다. 반가들이 즐비한 양동마을과 감포로 향하는 길에서 만난 기림사도 마찬가집니다.

이스케이프 팀이 비교적 여행자들의 손이 덜 탄 곳을 골라 돌아본 것은, 경주가 너무도 익숙해 ‘낯설게 만날 때’ 비로소 진면목이 보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보문호의 화려한 벚꽃이나 안압지의 야경, 또는 반월성에서 만난 유채꽃은 그 다음 순서였지만, 늘 보았던 그 아름다움도 여전했습니다.

경주 = 글·사진 박경일기자 parking@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안압지의 풍경은 낮보다 밤이 더 황홀하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간접조명을 받은 누각들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이미지 크게보기 마치 비밀처럼 숨겨져 있는 흥덕왕릉. 왕릉의 주변은 구불구불 몸을 뒤틀며 자란 소나무들로 대낮에도 햇볕이 안 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