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손바닥만 한 카메라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사진가란 직업이 가끔씩은 지루할 때도 있다. 매일 창의적이어야 하고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직업이지만, 반복되는 스케줄과 직업적 타성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의 마음을 짓누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면 갑자기 일상을 털고 멀리 훌쩍 배낭 여행을 가고 싶기도 하다. 그만큼 매너리즘을 두려워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괴팍한 작가적 사고방식 때문인지, 가끔 일상을 깨는 ‘새로운 손님 맞이’는 그 어떤 일탈보다도 흥미롭고 긴장된다.

‘새로운 손님 맞이’라 이름 붙인 이 흥미진진한 일탈은 스튜디오를 갑자기 찾아온, 상상을 초월하는 개성 넘치는 재주꾼들의 침입을 말한다. 제멋대로 튀어 오르는 럭비공 같은 성격의 새로운 손님은 나의 지루한 스튜디오에 엄청난 에너지와 생기를 불어넣어준다. 그래서 나는 늘 그런 새로운 손님을 기다리며 살아가지만, 기다린다고 찾아오는 것도 아니니,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내가 요즘 잔뜩 취할 정도로 빠져있고 좋아하는 새로운 손님은 다름 아닌 ‘에픽하이’다. 타블로와 미쓰라 진, 디제이 투컷츠. 이들 세 힙합 전사들의 ‘스튜디오 습격사건’은 최근의 내 일상에서 가장 흥분되는 사건의 하나였다.

거침없는 청춘들의 행동과 말투, 그리고 일에 대한 자신감과 신념 등은, 어쩌면 모던한 청춘의 모습을 대변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두세 번 그들을 만나고 나서는 그 사고와 말투까지도 완전히 흉내 낼 만큼 그들과 가까워졌으며, 상대를 끌어들이는 그들의 흡입력은 가히 무섭기까지 했다.

내가 에픽하이를 만나게 된 것은, 이달 말로 예정된 에픽하이의 공연 디렉터를 맡게 된 가수 김장훈 덕분이다. 에픽하이와 김장훈과 나는 한 스튜디오 안에서 포스터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가 작업하는 모습은 한 편의 컬트 무비처럼 현란하고 종잡을 수 없는 모습 그 자체였다. 알 수 없는 대사와 액션이 난무(?)하는 촬영장의 분위기…. 개성과 본능을 감추지 않고 표현해 내는 에픽하이 3인의 자유분방함 때문에 촬영은 기대 이상으로 성공적이었다.

심한 욕들로 가득 찬 그들의 노랫말을 들으면서 처음에는 당황했었지만, 어느덧 이유 있는 반항에 사진가인 나도 동조하게 되었다. 반항적인 음악과 함께 스튜디오의 카메라 앞에서도 얼지 않고 뿜어내는 거침없고 자유로운 행동은 일탈을 꿈꾸는 나에겐 아름답게 보이기까지 했다. 나에게 그들은 신선한 자극제가 되었고, 나를 대신하여 청춘의 반항과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해주니 그 이상 고마울 것이 없다.

외모에서 풍기는 에픽하이의 느낌은 반항 그리고 거침, 그래서 다분히 폭력적인 이미지라고까지 할 수 있다. 기성 세대가 되어버린 나를 습격한 그 ‘새로운 손님’은 잠재된 나의 갈증을 충분히 해소해 주었다. 그 어떤 반항도 아름답게 보이기만 하는 에픽하이, 8월이 가기 전에 그들 세 반항아와 김장훈이 준비하고 있는 콘서트 ‘파이터 클럽’에서 꼭 그들과 다시 만나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