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최대의 부도사건이자 회계부정 사건으로 ‘주식회사 미국’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무너뜨렸던 에너지 기업 엔론의 최고 경영진에 대한 재판이 지난달 30일 텍사스주 휴스턴 연방법원에서 시작됐다. 2001년 9·11테러로 충격에 빠져있던 미국을 또 한차례 강타했던 엔론의 최고경영진에 대한 재판이 사건 발생 4년만에 시작되자 미 언론들은 이 회사의 케네스 레이 전 회장과 제프리 스킬링 전 최고경영자(CEO)의 법정 표정과 연방검찰·변호인단의 공방을 대서 특필하고 있다.

◈피고인들 가족과 함께 법정출두=레이 전 회장은 부인과 함께 법정에 들어섰다. 스킬링은 변호사와 함께 법정에 나왔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 저널 등 미 언론에 따르면 레이 전 회장과 스킬링 전 사장의 가족들은 법정에 한 줄로 나란히 앉았다. 레이 전 회장은 부인 린다의 어깨를 한손으로 껴안고 법정을 가끔씩 떠나기도 했다. 스킬링 전 사장은 미소를 지으면서 짧은 휴정 시간 동안에는 세 자녀와 부인 레베카 카터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했다. 피고인들이 짐짓 느긋한 표정을 짓는 것과는 달리 검찰과 변호인단은 이 사건을 정반대의 방향에서 해석하며 창과 방패의 설전을 벌였다.

레이 전 회장을 7건의 부정 및 공모혐의로, 스킬링 전 CEO를 31건의 부정·공모·내부거래·회계감사시 허위증언 혐의로 기소한 검사들은 배심원들에게 피고인들의 사기 행각을 보여주는 테이프 등의 증거자료를 제시하며 단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반면 변호인들은 두 피고인들이 얼마나 훌륭한 경영자였는지 부각시키며 이들은 부도의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날 선정된 12명의 배심원들은 시종 진지한 표정으로 양측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몇몇은 꼼꼼히 기록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배심원단 하루만에 선정=엔론 최고경영진에 대한 첫 재판에서 심 레이크 연방판사는 하루만에 12명의 배심원을 선정했다. 그리고 4명의 예비배심원들도 지명했다. 미 언론들은 예상보다 굉장히 빠른 선정이었다며 놀랐다. ‘살림의 여왕’이라는 마사 스튜어트의 내부자거래 사건은 배심원 선정에 닷새가 걸렸고, 유명인물 형사사건에서도 종종 일주일씩 걸리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속도였다. 이는 레이크 판사의 의지와 노력의 산물이었다.

그는 지난해말부터 400여명의 배심원 후보들에게 엔론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는 설문지를 보냈다. 피고인에 대한 편견 여부를 가리기 위한 절차였다. 설문지에 대한 답변을 근거로 레이크 판사는 변호인단과 함께 300여명을 후보명단에서 제외했다. 나머지 100여명의 후보는 법정에서 변호인단이 선별했다. 신속한 진행을 위해 판사는 변호인에게 40분간의 시간만 허용해 피고인에게 불리한 편견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후보들을 배제하도록 했다.

◈재판 4개월만에 끝내겠다=레이크 판사는 법정에 참석한 100여명의 배심원 후보자들에게 “이번 재판은 가장 흥미있고 중요한 사건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하지만 여러분들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향후 넉달 내 재판을 끝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판에 앞서 레이 전 회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오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공정한 판단을 내려줄 공정한 배심원단을 선정하는 것”이라며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당초 미 언론들은 이번 재판이 엔론의 본거지였던 휴스턴에서 열리는 것과 관련, 피고측이 ‘여론재판’ 가능성을 우려하며 반발할 경우 배심원단 선정이 지연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었다. 엔론 파산으로 실직한 4000여명의 직원들 가운데 대다수가 텍사스주 출신들이었기 때문이다. 레이크 판사가 “이번 사건은 형사사건이며 피고는 스킬링과 레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이 재판의 목적은 레이와 스킬링이 법을 어겼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게 목적이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혹은 대안은 무엇인지 가리자는 것이 아니다”고 못박은 것도 이같은 논란 때문이었다.

최형두기자 choih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