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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금 안식년 휴가중이다. 지난해에는 주로 미국 대학을 둘러보고 지금은 3개월 예정으로 일본 도쿄(東京)대에 머물고 있다. 그의 말대로 ‘세상 돌아가는 것이 하도 요상해서…’ 밖에서 한국사회를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밖에서 본 한국, 잠시 떨어져서 본 한국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또 지금 세계 지식사회의 관심은 어디에 있을까. 1년 동안 세계를 주유하고 있는 조 교수의 생각을 들어본다.

e메일 인터뷰를 시작하며 서너차례 질문지를 교환하려 했으나, 한국사회에 대한 그의 넘치는 생각 덕분에 단 한번의 질문지에서 그는 단 한개의 질문만 선택해 스스로 문답을 꾸리며 장문의 답변지를 보내왔다. 이를 대폭 추려 전재한다.

―일본에는 언제 가셨는지? 뭘 하고 계신지?

“2005년 3월부터 안식년이에요. 대학에서는 ‘연구년’이라고 부르라고 하지요. 첫학기에는 연세대에 문화인류학과를 만드는 준비 작업, 하자 작업장 학교의 체계 잡는 일, 그리고 성미산 학교 자문 등으로 ‘로컬’ 만드는 일을 주로 했고, 여름부터는 좀 ‘널널하게’ 세상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하도 요상해서요…. 이제 한달여밖에 안 남았네요… 아, 아쉽다.”

―널널하게 세상을 돌아보면서도 어떤 주제가 있을 듯합니다.

“두개의 주제를 가지고 여행을 떠났었는데, 하나는 ‘대학의 글로벌라이제이션’ 상황을 알아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기 근대적 삶’에 대해 좀더 구체적 감을 갖고 싶은 욕심이 있었지요. 지금 한국에서는 대학 글로벌라이제이션으로 온통 난리가 나 있지 않나요?

대학 당국 못지않게 대학생 개개인들도 미래에 대한 불안이 너무 커서 가진 돈을 털어 글로벌체험과 감수성을 위해 어학연수를 가거나, 국제 자격증을 얻으려고 지구 어디든 찾아나서고 있어요. 한국 대학생들은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자신들이 ‘소모성 건전지’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용량이 큰 건전지’가 될 것인지, 아니면 ‘재충전 건전지’가 되는 방법이 있을지를 찾아 헤매고 있더군요. 한국 사회가 국민들을 보호하지 못하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안쓰럽기도 하고….”

―미국 대학들은 어땠습니까.

“지난 여름부터 미국의 주류 대학 몇 곳을 둘러보았는데 대학당국에서 밀어붙인 글로벌라이제이션 프로젝트들은 파리를 날리고 있거나 기획자들이 매우 좌절해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이 원래 매우 국수주의적인 나라인데 전쟁 이후 그 경향이 더 강해진 것 같아 좀 염려스럽습디다.

전쟁은 다음 번 선거 전에 끝날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요? 월남전때도 그랬고, 중산층 이상의 자녀가 전쟁터에 가야 하는 상황이 오면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어쨌든 전쟁을 끝낼 수밖에 없을 거라고…. 전세계를 그렇게 휘둘러놓고는 결국 자국내 여론층 자녀들이 군대에 가야 하는 상황이 오면 중대사안이 별 이견 없이 결정나버리는 사태, 참 허망하지요?”

―힘드셨겠네요. 좀 절망적인 기분이 드는데요.

“다행히 구석구석에 새로운 ‘세포’들이 생겨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그런 세포라 할 수 있는 ‘퍼플문 베이’란 별명을 가진 한 작은 마을에 좀 오래 머물렀었지요.

벤처나 주식 등으로 돈을 아주 많이 번 조기 은퇴자들과 홈리스, ‘Do It Yourself’를 강조하는 아나키스트적인 청년들(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아주 조화롭게 어울려 사는 마을이에요. 밤늦게까지 마을 중심가에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이 안전하게 다니고 늘 노랫소리, 춤추는 사람들도 볼 수 있어요.”

―‘후기 근대적 삶, 내지 후기 근대적 마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내가 매일 간 요가 스튜디오는 예전에 작은 교회였는데 아침부터 밤 9시까지 수업이 있어요. 열댓명이 자기에게 맞는 선생을 골라서 단골로 수업을 듣지요. 요가 선생은 친구 같으면서 요가할 때는 ‘스승’이 되지요. 수업 마지막에는 다들 5~7분씩 담요를 덮고 자거든요.

끝나면 만나서 서로 안면 트고 하는 것도 없어요. 그냥 함께 명상하는 동료로, 서로의 존재를 따뜻하게 느끼는 것 정도…. 인류학에서 최근에 비서구 지역, 특히 제3세계 마을들은 이주 노동자들이 오가고 이사와 이동이 잦은 ‘공항 대합실’처럼 되어 버렸으니 연구 방법론을 새로 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는데, 이른바 제1세계에서는 이런 마을들이 생겨나고 있었던 것이지요.

나는 ‘후기 근대’에 살아남을 국가는 결국 바로 이런 삶이 가능한 마을들이 들어설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내는 능력을 가진 조직일거라 생각해요.”

―일본에도 그런 후기 근대적 마을들이 들어서고 있나요?

“일본에서는 그런 식의 새로운 후기 근대적 마을을 찾아보기는 힘들 것 같고요, 도쿄에서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만족하고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고 있다는 점이에요. 양로원에 가도 그렇게들 깔끔하게 하고 계시지요. 일본 자체가 거대한 양로원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좀 있긴 하지만 국민을 그렇게 열심히 보호하는 국가도 드물지 않나요? ”

―후기 근대적 삶, 또는 마을이라는 말이 매우 마음에 듭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십시오.

“후기 근대적 삶이란 일단 진보주의적 생각, 뭔가 열심히 잘하면 대박을 칠 것이라는 식의 터무니없는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겠지요.

마구 생각 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 진보주의, 자연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므로 마음대로 파괴해도 된다는 ‘인간’ 중심주의를 벗어나서 나름의 중심을 잡고 가는 것이지요. 인생의 어려움을 한바탕 겪은 후, 지혜로움 같은 것이 생겨나는 시공간을 말하는데, 인류학에서는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영리(clever)’하게 만들었지만, 앞으로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성숙하고 지혜로워져야(proper)’한다고 말하지요.”

―한국은 근대화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으로 지금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정말 이제는 그간의 ‘토건국가식 근대화’의 방향을 좀 돌리고 속도 조절을 해야 한다고 봐요. 돌봄 사회로의 방향전환이 시급하지요. 그러지 않으면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점점 심각해질 것이고, 황우석 교수 사태 같은 것이 자꾸 일어날 것이고, 한국사회는 이제 더 이상 갈 데가 없을 거예요.

전세계 모든 곳에서 청년들은 고실업과 불안정 고용으로 힘들어하고, 부모세대에 눌려서 무기력증을 앓고 있고, 거대한 신자유주의체제에서 소진될 자신의 운명에 대해 불행감을 갖고 있지요. 계급의 양극화, 청년 실업, 빈곤, 고도관리체제의 인간의 부품화, 그리고 모두가 ‘신’이 되어버린 바벨탑 문화로 인해 외롭고 힘들어하고 있지요.”

―이런 후기 근대적 상황을 풀어내기 위한 방법이 있는지요?

“나는 ‘사회를 보호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진행은 물론 긴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고 너무 부산을 떨 필요도 없겠지만 나는 이것이 자본주의의 ‘끝물’이기를 바라고 있어요. 호혜적 관계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시장원리로 가게 되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은 존속해갈 수 없게 되지요. 신을 다시 불러들이고 사람들은 겸손해져야 하지요. 그리고 호혜의 관계가 가능한, 바로 그 ‘사회’를 보호해야 합니다.”

―물론 한국사회는 ‘보호할 만한 사회’가 아니겠지요?

“예, 전혀 아니지요. 모든 것이 시장 원리로 환원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나는 스스로를 ‘소모성 건전지’라고 인식한 통찰력 있는 청년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어요. 후기 근대 정보사회의 문제를 산업사회적 독점 소유 개념으로 풀려다가는 정말 나라 말아먹기 꼭 좋겠지요? 올해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해요.”

―계획은?

“사실 이번 안식년에 다니면서 발견한 것 중 하나는 대한민국에 대해 변명을 하는 나를 발견한 것이지요. 그동안 내 일은 한국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었는데 막상 외부에 나가보면 한국사회를 전혀 세련됨과 섬세함이 없는 ‘사나이들’의 나라,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에 불행하게도 신자유주의로 막나가는 나라, 최첨단 소비문화로 치장된 유흥산업을 만들어가는 천박한 나라, 이런 이미지들이 굳어지고 있더라고요.

여기에 황우석 사태까지 겹치면서 한국의 드라마틱한 속성이 좋지 않은 이미지 쪽으로 기울고 있더군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갑자기 우리 사회를 옹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마무리하고 있는 영어 책 제목을 ‘Feminist Critique South Korean Society’에서 ‘Feminist Apology of South Korean Society’로 바꿀까 생각중이에요. 이제 누구를 비난한다고 문제가 풀릴 때가 아니지요. 상생의 언어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배문성 문화부장 msba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