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훈 지음/사이언스북스

"이들이 잡은 짐승으로는 곰, 멧돼지, 영양, 스라소니, 날다람쥐 등의 포유류는 물론이고 조류 및 해조(海鳥), 어패류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그가 본국 스웨덴에 보낸 조류만 380종이었다니까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북부 지방에서의 사냥이 끝나자 지리산을 탐사했고, 제주도까지 건너가 야생 동물을 포획했으며, 신의주에 캠프를 차리고 압록강의 조류 생태를 조사했다."

신복룡(건국대)교수가 역주한 '한국의 야생동물지'(슈텐 베리만 지음집문당)의 역주자 머리말 중 일부다. 책의 저자 슈텐 베리만(1895~1975)은 스웨덴 출신의 자연탐사 여행가이자 동물학자. 캄차카 반도와 쿠릴열도의 생태계 연구가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1935~1936년, 스웨덴 자연사 박물관을 위한 표본수집을 위해 우리나라를 여행한 뒤, 이 책을 썼다.

50필의 말을 비롯한 대규모 인원, 장비를 동원하고 일제 총독부의 도움과 관동군의 호위까지 받으며 동물 사냥에 나섰던 베리만의 활동을 놓고 책의 역주자는 "엄청난 생태계의 파괴"로 일제의 여느 악행 못지않은 "끔찍스럽고 치명적인 착취"라며 가슴을 친다.

신교수의 이런 지적은 맞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의 방향을 바꿔보자. 지금부터 65년 전, 북구의 크지도 않은 나라, 스웨덴이 한갖 자연사 박물관을 위해 50필의 말로 대표되는 대규모 물자에 더해 '외교력'까지 동원, 극동의 야생 생태계를 탐사하고 대대적인 표본수집에 나섰다면, 이와 관련한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이병훈(전북대)교수의 신간 '자연사박물관과 생물다양성'에 따르면 한국의 자연사 박물관 수는 0개. 이를 위해 책정된 올해 예산도 전무하다. 이에 비해 전세계엔 5000여개의 자연사 박물관이 있으며, 미국에 1200여개, 독일에 600여개, 캐나다와 러시아에 각각 200여개, 일본에 150여개가 있다.

국민소득이 비교적 낮은 폴란드와 아르헨티나에도 각각 100여개가 있으며 말레이시아와 태국, 이집트는 물론이고 방글라데시나 우간다에도 10여개씩 있다. 일부 대학에 부설된, 유명무실한 수준의 자연사 박물관을 염두에 두더라도 한국의 현주소는 OECD 29개 회원국 중 국립 자연사 박물관이 없는 유일한 국가로, 후진국까지 포함하더라도 자연사 박물관 최빈국이란 점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처음으로 돌아가자. 자연사박물관은 무엇이며 대체 그것이 왜 필요한가. 자연사 박물관에 대한 인식의 확산을 위한 개론서를 자임하는 책은 자연사 박물관의 역할과 그 중요성은 물론이고, 국립 자연사 박물관 설립의 필요성과 추진 현황도 소상히 적고 있다. 책에 따르면 자연사박물관은 동식물과 광물, 생태계와 인간의 과거와 현재에 관련된 표본을 수집보존연구전시하여 사회일반에 공개하고 연구교육감상을 돕는 중심기관이다.

중요한 것은 생태계가 위기에 처한 이 시대, 자연사 박물관이 생물다양성을 보존해 지구살리기에 앞장서는 공간이자 인간의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모색하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96년부터 3년동안 국가주도로 추진되던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이 구제금융 시대를 맞으면서 일단 좌절됐다. 위기일수록 필요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성찰의 공간이자, 아프리카 후진국에서도 보편화한 자연사 박물관이 예산 우선순위에서 밀려 다시 20년 미뤄진 것이다.

자연사 박물관과 관련한 자료를 많이 모으긴 했으나 책의 구성은 어지럽고 내용도 자주 중복된다. 박물관의 중요성을 설득하는 부분도 더러 요령부득인 점이 눈에 띈다. 나라 전체가 경제, 즉 돈이 되는 과학기술에만 몰두하고,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의 소홀함이 자연사 박물관을 세우지 못한 이유라고 하면서도 자연사 박물관을 세워야 할 주요 이유로 돈벌이를 내세우는 좌충우돌식 논리도 문제다.

그러나 책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강조한 박물관의 중요성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흔히 위기가 닥칠때마다 위기는 기회 운운하고 이때야말로 기초부터 확고히 다져야 할 때라며 입을 모은다. 그러나 눈앞의 돈벌이에 사로잡혀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연사 박물관 하나 세우지 못하는 나라에서 기초 다지기인들 가능할리 없다. 나라의 경제규모가 65년전 스웨덴은 물론, 현재 스웨덴을 능가하는 우리에게 자연사 박물관은 기본에 속하는 사항이 됐다.(전문성★★★ 대중성★★ 완성도★★)
<김종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