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사랑방 가구 붓걸이 벽에 거는 대표적인 사랑방 가구 붓걸이. 고비 등과 함께 텅빈 벽을 장식했다. 37447,37448,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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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닮은 심성이 짜낸 또 다른 자연

전통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 목가구도 향수병을 불러일으키는 그 어떤 것이다. 삶 속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기억 속에 남아 우리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늘 되묻고 있기 때문이다. 옛 목가구는 단순히 나무만으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한국인의 삶과 문화와 생각 등 한국적인 모든 것이 무수한 결을 이루고 있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돌아온 누님이 거울 앞에 섰을 때와 같이 우리는 목가구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옛 목가구를 만나기가 그리 쉬운가. 여기저기 박물관을 찾아다니면서 발품을 팔아야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목가구 특별전이라도 열리기를 마냥 기다려야 한다. 용인 호암미술관에서는 연말까지 ‘우리 목가구의 멋’전을 열고 있다. 비장하고 있는 목가구가 한꺼번에 공개되는가 싶었으나 나전칠기나 화각장 처럼 화려한 가구를 제외시키고 나뭇결과 금속장식만으로 조형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가구만 골라 선보이고 있다. 그동안 주로 동물미술 등 주제별로 하던 소장품 테마전에서 다소 벗어난 듯 싶지만 깔끔한 기획력만은 여전히 돋보이는 전시회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입구 쪽에는 사방탁자와 함께 붓걸이, 경상, 연상 등 문방가구가 진열되어 이 전시회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도자기나 수석을 올려놓고 감상하는 사방탁자는 주로 문갑과 짝을 이뤄 사랑방 벽에 붙여 배치한다. 사방탁자는 두가지가 연상된다.

하나는 사방탁자의 조형에 영향을 미쳤던 선비들의 금욕적이고 절제된 심미안이고 하나는 극단적으로 조형을 단순화시키는 미니멀 아트다. 진즉부터 얘기되어 왔듯이 그 둘이 서로 통한다는 것은 여기서도 확인된다. 건물 설계와 실내 디자인을 함께 하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한국 고가구를 선호했던 것도 그가 미니멀 아티스트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뒤에 얘기 하겠지만 우리 목가구도 건물·가구 동시 디자인의 산물이다.)

벽에 걸린 창살 모양의 붓걸이도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문갑처럼 낮은 가구를 배치한 뒤 남은 텅빈 벽을 장식한 필가 답게 선의 구성은 아기자기하다. 그 옆에는 대개 두루마리 등을 꽂아두던 고비가 걸렸다. 전시된 고비는 대나무를 길게 잘라 만든 것으로 쭉쭉 뻗은 선에서 역시 미니멀적 요소를 느끼게 된다.
선비들이 책을 놓고 보던 18세기 서안 하나가 검소함을 과시하고 있다. 서랍에 한자가 새겨져 있어 겨우 선비의 가구임을 알려준다. 천판이 경상처럼 양쪽 귀가 말려올라가지 않았고, 다리도 일자다. 경상은 원래 절에서 사용하던 것인데 두루마리 읽기가 편해 선비들도 쓰기 시작한 것 같다. 손을 대면 선비정신이 쓱 묻어날 것 같은 것은 아무래도 서안 쪽이다.

그런데 그 서안에서는 선비의 취향보다는 그것을 깎고 다듬었을 장인의 숨결이 더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무엇보다 사방탁자와 같은 간결성을 보이면서도 사방탁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질박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옛 장인들은 누구나 기교를 부리지 않고 소박하게 목공예품을 만들었는데 이 서안 만큼은 그것이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빠졌지만 ㅂ자를 뒤집어놓은 모양의 서안도 있다. 불필요한 것은 모두 제거하고 뼈대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18세기 서안에서 바로 이거다 싶은 멋이 느껴지는 것은 간결미 보다는 질박함 때문이다. 미술사가들에 의해 무념무상, 무기교의 기교, 무작위와 같은 말로 수식되곤 하던 멋도 바로 이 질박함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공예품에서 영감을 얻어 세계적인 민예운동가가 된 일본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목공품’이란 글에서 아름다움의 원천은 그 아름다움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가 아니겠냐고 말한다. 우리 목가구의 특질을 잘 말해주는 귀절들을 인용해 본다.

‘조선의 목공품은 인간 이외에 자연이 가미되어 인간의 자로만 잴 수 없다.’ ‘나무가 반듯하게 켜지지 않아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조선의 물건에서는 사람인지 자연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일을 한다.’ ‘중국이나 일본의 것은 이따금 가공이 지나쳐 도리어 그 맛을 잃어버린다.’ ‘성실하게 만들려고 생각해도 만드는 방식이 원래 작위가 없기 때문에 그런 문제도 사라져버린다.’ ‘가까이하면 가까이 할 수록 무언가 떠나기 어려운 친근감이 생긴다.’

서안 옆에 놓이는 것은 벼루 먹 종이 연적 등을 넣어두는 연상이다. 전시장에는 대나무로 기하학적 무늬를 장식한 죽장연상과 먹감나무 무늬를 살린 연상이 보인다. 붓에 먹을 듬뿍 묻혀 그은 듯한 무늬는 가구의 분위기를 깊고 그윽하게 한다(도록에 사진만 실린 먹감나무 무늬 문갑도 인상적이다). 목가구의 판재는 나뭇결을 그대로 살려 쓴다.

전시되고 있는 삼층장도 그렇듯이 느티나무나 물푸레나무의 옹이를 켜서 용이 뒤엉킨듯한 무늬를 얻기도 한다. 판재의 무늬는 자연상태의 나뭇결이면서 강이나 산 같기도 한 자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옛 목가구의 자연미를 얘기할 때 나뭇결 무늬는 겉모습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가구 양식 자체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풍족하지 않은 재료와 주거 환경과 자신의 심성에 순응하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전해지는 옛 가구는 온돌방에서 생활하는 사람의 눈높이와 방의 구조에 맞게 설계된 것들이다. 우리 목가구는 온돌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층장과 같이 키가 큰 가구도 한국사람의 평균키를 넘지 않는다. 게다가 한복은 개켜두거나 의걸이장의 횃대에 접어 걸쳐두면 되기 때문에 양복장처럼 클 필요가 없었다. 사랑방이나 안방 가구가 모두 아담한 사이즈인 것은 그 때문이다.

옛 목가구의 투박함은 재료의 한계에서 왔다는 지적도 있다. 나무들이 쉽게 트거나 뒤틀려서 그렇게 가공에 힘을 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옛 목가구의 미덕은 그런 단점을 지혜롭게 보완하여 튼튼하고 보기 좋게 만들어졌다는데 있다. 전시관의 삼층장을 보면 문짝 상하좌우가 가로동자나 동자주로 칸칸이 나뉘어 있다. 이것은 단순히 한옥의 창호와 벽을 본 뜬 것이 아니라 나무가 수축하거나 팽창해도 뒤틀리지 않게 한 장치다.

가구 기둥이나 판재를 이을 때 못을 쓰지 않고 짜임새 기법을 사용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이다. 가구에 무쇠장식이 덕지덕지 붙는 것은 짜임새를 보완하고 더욱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장식을 필요한 부분만 붙여도 오랜동안 견딜 수 있을 만큼 짜임새는 튼튼했다. 19세기 가구로 보이는 전시관의 삼층장, 의걸이장, 삼층책장이 그 증거이다.

반닫이는 두꺼운 판재에 묵직한 장식을 달아 멋을 부렸다. 조선시대에 대다수 서민들은 가구라고 해야 반닫이 정도였으며 여기에 옷을 넣어두고 천판 위에 이불을 개어얹었다. 지방마다 생산되는 재료가 다르고 취향이 달라 저마다 향토색을 갖게 되었다. 전시관에는 이미테이션으로 흔히 볼 수 있는 강화 반닫이, 무쇠장식에 구멍이 숭숭 뚫려 숭숭이 반닫이라고도 하는 박천 반닫이, 실패형 경첩을 달은 밀양 반닫이 등이 전시되고 있다.

우리의 주택구조와 풍습은 독특한 소반문화를 낳았다. 부엌에서 실내로 음식을 날라야 하고 독상이 많이 사용되는 데다가 그릇들도 무거워 작고 이동이 편한 소반이 많이 사용되었다. 좀이나 벌레가 쓸지 않고 틈이 생기지 않는 은행나무에 생옻칠을 한 소반은 비싸게 쳐주었다. 전시된 나주반(대나무형 다리), 해주반(다리 널판에 투각), 통영반(운각)은 저마다 모양이 독특했다.

작고한 고고학자 김원룡 박사는 옛 목가구의 아름다움을 ‘간결한 선, 명확한 면의 미’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조목공가구의 미’(배만실 지음)란 책에서는 현존하는 고가구를 일일이 측정하니 칫수가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가로 세로가 황금비율인 가구가 가장 많았다는 연구결과를 밝히고 있다. 우리가 목가구를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상당 부분 비례미에서 오는 것임을 입증한 셈이다. ‘한국의 목공예’(이종석 지음)에서는 선비적 기품이 가장 잘 반영된 것이 목칠공예임을 지적했다.

나아가서 ‘한국미술의 자생성’에 실린 한 논문(경희대 최병식 교수)은 유교나 도교 불교가 무작위적인 미감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탐구하면서 철학적 수양과는 거리가 먼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목가구의 한국적 미감은 이들 사상 이전에 있었던 무속적 감수성,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심성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가 아무리 우리 목가구를 실내 장식에 활용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삶과는 무관하다. 현대의 주거생활과 실용성을 잃은 옛 목가구는 어울릴 수가 없다. 우리는 이 시대에 맞은 미감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조선 중기 이후 온돌이 전국적으로 보급되면서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왔을 때 옛 사람들은 자연과 집과 자신의 심성에 어울리는 목가구를 만들어 사용해 왔다. 그렇다면 옛 목가구의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환경에 순응만 한 것이 아니라 분명 새로움을 찾아 도전한 결과물로서의 아름다움인 것이다.

〈글·오병수 / 사진제공·호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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