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현 KAIST교수·IT경영학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그룹 계열사 임원 2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세미나에서 ‘독한 삼성인’을 주문했다. 현재를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로 규정하고 사즉생의 정신으로 돌파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이번 세미나의 주제는 ‘삼성다움 복원을 위한 가치 교육’이었다.

삼성전자는 매년 위기를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특별하다. 삼성전자는 1969년 창립한 이래 TV에 이어 반도체와 스마트폰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성하며 대한민국의 자랑이 됐다. 2023년 말 기준 삼성전자의 주식을 보유한 개인 투자자는 520만 명으로, 국내 전체 투자자의 37%에 해당한다. 시가총액은 국내 시장의 20%, 수출 비중도 18%에 이르며 대한민국 경제의 20%를 책임지는 핵심 기업이다.

그러나 국민이 삼성전자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 혁명이 촉발한 산업구조 변화 속에서 기존 반도체와 스마트폰 사업이 1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거 삼성전자는 소니를 꺾고 TV 시장 1위, NEC·도시바를 넘어 메모리 반도체 1위, 노키아를 밀어내고 스마트폰 1위를 차지했다. 그 후 변화의 흐름이 다시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2024년 AI 반도체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HBM 1위를 차지했고, 전통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중국 창신메모리가 위협한다.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TSMC와 격차가 더 벌어졌으며, 스마트폰 출하량도 2023년부터 애플에 밀리기 시작했다. 혁신한 기업이 다시 혁신 당하는 과거 패턴이 반복된다.

이 회장도 이러한 위기를 인정했다. 그러면 원인은 무엇이며, 방향을 어떻게 수정할 것인가? 기술적 초격차를 강조하고, 장기적 투자 관점을 견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더 구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지난 50년간 삼성전자는 ‘세계 1등’이라는 목표 아래 기술과 인재를 중시하며 현재의 이익보다 미래의 성장을 추구했다. 그러나 1등이 위협받는 지금,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삼성전자의 어려움은 1등 기업이기 때문에 겪는 도전이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지난 10년간의 경영 환경을 돌아보자. 2014년 당시 이건희 회장의 와병과 2017년부터 시작된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로 인해 삼성전자는 ‘삼성다움’을 고민할 처지가 아니었다. 어려운 시기에는 안정적 경영이 답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기술 중심, 인재 중심, 미래를 향한 장기적 안목이라는 삼성의 핵심 가치가 얼마나 유지됐는가? 지난 10년간 불가피했던 ‘현상 유지’가 오늘의 위기 시발점은 아니었는가?

‘삼성다움’을 복원하려면 핵심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책임 있는 이 회장이 그 가치를 바탕으로 임원들을 평가하면 된다.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그 가치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복도에서 만난 한 MZ세대 삼성전자 직원이 말했다. “그런데 왜 열심히 해야 하죠?”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지 않는 기업에서는 누구도 열정적으로 일하지 않는다.

이 회장은 1,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신속한 사법적 판단을 통해 불확실성이 해소된 이후, 책임 있는 이 회장이 삼성다운 가치를 바탕으로 임원들을 엄정하게 평가하길 기대한다. 그것이 국민이 걱정하는 삼성전자가 아니라,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삼성전자가 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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