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주인공 칸나의 29세부터 45세 현재까지를 연기한 배우 마츠 다카코. 실제 나이보다 젊게 보이게 하는 인공지능(AI) 디에이징 기술이 활용됐다. 미디어캐슬 제공

■ 영화 ‘첫 번째 키스’ 26일 개봉

‘괴물’쓴 사카모토 유지 각본
‘섬세한 대사’로 설득력·몰입감

오는 26일 개봉하는 ‘첫 번째 키스’는 주인공이 시간을 넘나드는 로맨스 영화다. 타임슬립이라는 설정에서 제목까지 빤하다는 인상을 주고도 남는다. 그러나 색다름이 느껴진다. 타임슬립 판타지가 애도의 경험담으로 전달되는 각본의 힘이다.

◇각본가 사카모토 유지

이를테면 “시간은 밀푀유와 같다”며 대화가 시작되는 장면. 밀푀유는 밀가루 반죽과 과일을 겹겹이 쌓은 프랑스식 과자다. 인간이 분류한 과거·현재·미래의 시간도 밀푀유처럼 한데 쌓여 있고 서로 스며들고 있다는 의미다. 주인공 칸나(마츠 다카코·松たか子)는 “중학교 2학년 소설 같다”고 핀잔 투로 답한다. 다만 얼굴 표정은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15년 전의 타임슬립을 방금 겪었고, 그곳에서 그 시절 남편까지 만나고 왔으니까.

사카모토 유지(坂元 裕二)의 각본은 ‘밀푀유’에 비유하는 대사, 칸나의 표정, 타임슬립 전후의 상황을 자연스럽게 조합했다. 124분의 러닝 타임을 이런 구성으로 끌고 간다. 강한 개연성에 걸려든 관객은 판타지 설정에서 오는 위화감, 어떻게 펼쳐질지 예상되는 결말 등에 관한 실망을 잠시 접어두고 애도의 단계를 밟는 칸나에게 몰입하게 된다. 예고편대로 남편 가케루(마츠무라 호쿠토·松村 北斗)는 전철에 치여 죽는다. 칸나는 타임슬립으로 만난 남편의 음식 취향, 직업 진로 그리고 자신과의 결혼까지 미래를 바꾸려 든다. 남편이 죽은 그 사건을 피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마음에 갖은 애를 쓴다. 애도의 초기 단계다.

◇애도의 시간, 타임슬립

사카모토 유지가 타임슬립을 각본에 넣는 일은 거의 없었다. 소년의 내면을 들여다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로 2023년 칸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남자답다” “일반적이다” 등의 일상적 말들이 듣는 이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는 상황을 담담히 보여줬다. 관객은 자신의 일상을 되돌아보고 자신을 괴물로 의심하게 되기도 했다. 앞서 사카모토 유지가 기획도 맡은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2021)는 청년의 사랑을 현실적으로 다뤘다. 구체적인 현실 묘사와 대사가 입소문을 탔고 지난해 재개봉까지 했다.

이번 신작에서 사카모토 유지의 시선은 중년으로 넘어왔다. 소년·청년을 다룬 작품에는 없던 타임슬립을 활용했다. 중년이 과거를 돌아보며 ‘이때 이렇게 했더라면…’ 식의 회상에 잠기는 일이 잦은 세대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연인, 가족 등을 상실하면 애도의 시간이 시작된다. 한때 연인이었다가 가족이 된 반려자를 잃은 슬픔을 다룬다면 타임슬립을 활용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칸나의 타입슬립은 가케루와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시간이었다. 사카모토 유지가 어떻게 타임슬립을 다루는지 지켜보며 즐길 수 있는 영화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