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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잔 술에 담긴 조선
이한 지음│청아출판사

유난히 고단했던 하루 끝에는 술이 간절하다. 소주, 맥주, 와인, 위스키까지. 사람마다 선호하는 주종도 다양하다. 술의 역사는 언제 시작됐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술을 즐겼을까. 책은 조선 시대 유명했던 전통술과 그 술을 둘러싼 왕과 신하들의 일화를 소개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야사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다. 서울대 동양사학과 대학원에서 석사를 취득한 뒤 꾸준히 역사책을 펴낸 저자의 맛깔스러운 설명은 덤이다.

유교 국가에서 술은 제사에 빠져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물론 사람들이 이 맛있는 술을 제사용으로만 썼을 리 없다. 술맛에 눈을 뜬 사람들은 부어라 마셔라 하기 일쑤였다. 왕이라고 다를 바 없었다. 세조는 신하들과 유난히 술자리를 자주 가진 왕이었다. 술자리에서 나랏일을 논의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른바 ‘술의 정권’이었다. 그러다 보니 사건 사고도 많았다. 거나하게 취한 정인지가 세조를 향해 ‘너’라고 부르는 행패를 부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역사에 길이 남을 대형 사고였다. 세조는 정인지를 처벌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몹시 나빴던 것 같다. 신하들 앞에서 대놓고 정인지의 만행을 폭로했다. 그럼에도 세조가 잦은 술자리를 가진 이유가 궁금하다. 조카를 죽이고 왕의 자리에 오른 세조가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했기 때문은 아닐까. 술을 마시면 사람의 본심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백성들은 어떤 술을 즐겼을까. 바로 ‘방문주’다. 그만큼 만드는 방법도 다양했다. 백설기에 밥과 끓는 물을 넣어 덧술을 하기도 하고, 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익반죽을 한 뒤 죽을 만들고 누룩을 섞는 법도 있었다. 방문주는 가장 흔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손에 들고 다니며 마시는 ‘아메리카노’와 같은 존재였다. 한때 일본의 탄압으로 방문주의 명맥이 끊기기도 했지만 최근 여러 지역에서 다시 주조하고 있다. 방문주에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토록 사랑받았는지, 한번 맛봐도 좋을 테다.

이쯤에서 국민 술인 ‘소주’는 어디 갔는지 궁금한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오늘날과 달리 조선 시대 소주는 고급술이었다. 술 만드는 과정은 원래 손이 많이 가는 데다가 이렇게 빚은 술을 증류까지 하면 양이 크게 줄어든다. 또, 소주는 독주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의 큰아들 이방우는 소주를 많이 마시고 죽었다. 세종의 형인 양녕대군이 벌인 술판에서는 소주를 많이 마시고 죽는 사람이 나왔다. 그럼에도 맛있는 소주를 마시고 싶었던 사람들은 소주에 꿀과 대추를 비롯한 온갖 감미료를 섞었다. 독주인 만큼 약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렇게 술을 진탕 마시고 난 다음 날 ‘해장’은 필수다. 아쉽게도 조선 시대에 해장국이라는 이름의 요리는 없었다. 그래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국수물(메밀가루를 물에 풀어 묽게 쑨 뒤 국수를 넣고 조금 더 끓인 음식)과 갈분응이(칡가루를 쑨 달콤한 죽)가 숙취 해소에 좋다고 말한다. 해장주도 빼놓을 수 없다. 고려 말기의 문신이었던 목은 이색은 눈 뜨자마자 해장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시 ‘독좌’에 기록하기도 했다. 그래도 명심해야 한다. 과음은 언제나 금물이라는 것을. 312쪽, 1만8000원.

김유진 기자 yujink021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