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 재심기각 결정 파기환송

강제 입맞춤 저항하다 깨물어
중상해죄 10개월형 받았지만
혀잘린 남성 징역 6개월 그쳐

“검찰 영장없이 구금” 재심 청구
재항고 끝 4년만에 기회 얻어

60년 전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문 죄로 구속 수사를 받은 데 이어 중상해죄로 징역형까지 선고받았던 최말자(78) 씨가 재심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 18일 최 씨가 낸 재심청구 기각 결정에 대한 재항고를 받아들여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당시 수사기관의 불법 구금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 조사가 소홀했던 점 등에 비춰 재심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불법 구금에 대한 최 씨의 일관된 진술 내용이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 검찰에 처음 소환된 1964년 7월 초순쯤부터 구속영장이 발부돼 집행된 것으로 보이는 1964년 9월 1일까지의 기간 동안 불법으로 체포·감금된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원심이 최 씨의 진술 신빙성을 깨뜨릴 충분하고도 납득할 반대 증거·사정이 존재하는지에 관한 사실 조사를 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최 씨는 이른바 ‘김해 혀 절단 사건’의 당사자다. 1964년 만 18세였던 최 씨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노모 씨(당시 21세)에게 저항하다 노 씨의 혀를 깨물어 1.5㎝가량 절단한 혐의(중상해죄)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법원은 최 씨에 대해 “혀를 끊어 불구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은 정당방위의 정도를 넘었다”며 1965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도 확정됐다. 또 검찰과 경찰은 당시 최 씨가 조사받으러 온 첫날 영장 없이 구속한 뒤 6개월간 구금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최 씨를 성폭행하려 했던 노 씨는 강간미수 혐의가 아닌 특수주거침입 혐의 등으로만 기소돼 최 씨보다 가벼운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성폭행 피해자가 가해자보다 엄하게 처벌받은 이 사건은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 사례로 법원행정처가 1995년 발간한 ‘법원사’에 실렸을 정도로 형법·형사소송법에서 주요 사례로 꼽힌다.

이 사건은 사건 발생 56년 만인 2020년 5월 최 씨가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하면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하지만 최 씨의 재심 청구에 대해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최 씨를 무죄로 볼 만한 명백한 청구가 없고, 검찰 수사가 불법적이라는 증거도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재심은 유죄 확정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비상구제 절차이고, 사건을 수사한 검사나 경찰이 당시 직무 범죄를 범했다는 것이 청구 사유인데 이에 대한 확정판결이 없다”며 “사실 조사도 없이 최 씨 진술 외에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재심 청구를 기각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실제 재심이 진행되면 본안재판에서 60년 전 판결처럼 최 씨에게 중상해죄가 인정될지, 정당방위로 무죄에 해당할지 등을 다시 다투게 될 전망이다.

강한 기자 str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