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스테파노 몬티 이탈리아 원자력 협회장이 4일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원자력발전설비 제조회사인 안살도 회의실에서 이탈리아 정부의 원전 복귀 배경과 추진 현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수진 기자

■ 35년만에 탈원전 폐기… 이탈리아 원자력협회 몬티 회장

수입 화석연료 ‘지정학 리스크’
태양광은 간헐성·비용 부담 커
안정적 수급·친환경, 원전이 답
우리가 SMR 개발 나서는 이유

2050년까지 원전 비중 22%로
건설 추진 국영회사 내달 설립

로마 = 박수진 기자 sujininvan@munhwa.com

유럽 탈(脫)원전 1세대 국가인 이탈리아가 최근 원전 복귀를 선언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한때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원전을 보유한 원전대국이었지만,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사고 후 원전 4기 가동을 중단하고 국민투표 끝에 탈원전을 결정했던 나라라는 점에서 이번 이탈리아의 탈원전 정책 폐기는 상징적이다. 1990년 마지막 원자로를 폐쇄한 뒤 약 35년 만에 유턴하는 이탈리아의 에너지 정책 구상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4일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원자력발전설비 제조회사 안살도 회의실에서 스테파노 몬티 이탈리아 원자력 협회장을 만났다. 이날 몬티 회장은 ‘에너지 트릴레마(trilemma·3개 딜레마)’ 극복을 위한 답으로 원전을 제시하면서 “한국과 이탈리아 간 원전 협력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탈리아가 35년 만에 소형모듈원자로(SMR) 개발에 나선다는 소식이 원전 생태계를 복구 중인 한국에서도 화제였다. 이탈리아 정부가 원전 재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경쟁력·에너지 안보·탈탄소의 에너지 트릴레마 때문이다. 모든 가능한 선택지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탈리아는 아직 70~75% 정도를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지만, 화석연료는 지정학적 이슈에 취약하다. 그런가 하면 신재생에너지는 ‘간헐성(間歇性)’이란 한계를 안고 있다. 에너지 저장장치 같은 비싸고 발전량 대비 차지하는 면적이 큰 백업수단도 필요하다. 특히, 태양광 발전의 경우 설비 공급은 중국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어 대외 의존도로 따지면 화력과 비슷한 실정이다. 송배전 등 시스템 비용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75%가 이탈리아 북부에서 나오지만, 태양광 설비는 일조량 같은 자연환경 조건이 좋은 남부에 집중돼 있다. 이에 생산된 전기를 북쪽으로 송전하기 위해 매년 수십억 유로의 인프라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따라서 신재생에너지처럼 탄소배출은 적으면서 24시간 안정적 수급이 가능한 에너지원이 절실하고 원전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

―이탈리아 에너지 가격은 어느 수준인가.

“유럽 전체적으로 가스나 전기 가격이 여타 경쟁국 대비 굉장히 비싸다. 예컨대, 유럽 전기료는 미국 대비 2~3배나 높다. 가스 가격 또한 4~5배나 된다. 이탈리아는 더 심하다. 다른 유럽 국가 대비 30~50%나 더 비싸다. 이 같은 경쟁력으론 감당하기 힘들고 지속이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에너지 안보를 유지하고 탈탄소를 추진하기에 적합하면서 경쟁력도 갖춘 에너지원은 원전이었고, 구체적인 실행에 나서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정부가 연내 SMR 개발과 관련 입법을 마무리하고 10년 내 가동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들었다. 상세 안을 소개해 달라.

“2050년까지 원전 비중을 11~22%까지 높이는 내용을 포함해 에너지 전반에 관한 시나리오가 올 7월 의회에 제출됐다. 또 이를 실행하기 위한 법적 프레임 워크, 규제법안 입법과 규제기관 설립, 원전 건립 프로젝트를 위한 재정 지원 등 인센티브를 포함한 방안이 이른 시일 내 추가로 의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원전 신규 건설을 추진할 새로운 국영회사도 내달 설립돼 유망 기술 선택, 플랫폼 구축, 프로젝트 개발 업무를 담당하게 된다. 특히, SMR이나 첨단모듈원자로(AMR) 기술이 상용화될 때까지 기본 인프라 재구축에도 힘쓰게 될 것으로 보인다.”

―35년간 탈원전 상태였는데, 산업 전반이 약화했을 듯한데.

“이탈리아 원전 산업은 여전히 건재하다. 유럽 내 10%의 원자력 인재를 배출하고 있다. 상당수의 이탈리아 기업들이 영국, 프랑스, 루마니아 등 전 세계 원자력 사업에 참여하고 있고 해외 원전 산업계에 몸담고 있는 이탈리아 원전 엔지니어도 다수다. 물론, 새로운 원자력 목표를 달성하고 관련 조직을 설립하기 위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GW당 1만 명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를 위해 이탈리아가 원전을 재도입한다는 점과 10만 명의 신규 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체르노빌 사태와 일본 후쿠시마(福島)원전 사고 후 이뤄진 국민투표에서 반대 여론이 우세했는데 현재 반응은.

“국민이 원전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특히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현실적인 판단을 하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 원자력 발전 기술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첨단원전 관련 양국이 협력 여지가 있나.

“아직 SMR이나 AMR 등 첨단 원자로 기술과 관련해서는 시장 자체가 없고 향후 운영 경험도 중요하다. 다만, 한국은 이미 3세대 원전과 관련해 아랍에미리트(UAE) 사업(바라카 원전)에서 충분히 성공 케이스를 보여줬다. 정부 간 추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상호 호혜성을 바탕으로 한·이탈리아 양국이 충분히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