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역의 고유성을 적극 활용한 서귀포 하례·정령마을 축제 풍경. 서귀포문화도시센터 제공

■ 이 도시가 특별하다
(上) 기록과 기억의 도시 - 서귀포·청주

서귀포 ‘露地와 老智’
105개마을 생태·문화가치 융합
露地를 통한 老智 계승 핵심가치
유·무형 미래문화자산 전달 노력

청주 ‘기록문화 창의도시’
기록을 도시의 문화정체성으로
도시 70% ‘15분 문화생활권化’
유네스코 기록유산센터 개관도

서귀포(제주) =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청주(충북) =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문화로 미래를 모색하는 ‘문화도시’가 국책사업으로 본격화한 지 5년이다. 지역은 특색있는 문화자원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해, 문화 창조력을 강화해 왔을까. 1차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돼 올해 ‘문화도시 1.0’을 마무리하는 부천, 원주, 청주, 천안, 포항, 영도, 서귀포를 찾아가 봤다. 기억과 기록의 힘으로 새 먹거리를 발견한 도시, 시민의 일상에 예술을 품게 한 도시, 예술과 기술을 융합해 산업화하는 도시 등 저마다의 고유성과 다양성으로 ‘문화도시 2.0’을 꿈꾸는 7개 도시를 살펴봤다. 이들의 문화적 경쟁력, 사회·경제적 파급력, 지속가능성의 미래까지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미지 크게보기 서귀포의 로컬브랜드마켓 놀멍장의 풍경. 서귀포문화도시센터 제공

◇오래된 지혜와 자연의 어울림…3년 연속 ‘최우수 문화도시’ 서귀포의 힘 = 지난 11월 23일부터 이달 2일까지 제주 서귀포시민문화·체육복합센터에서 열린 전시 ‘문화도시 서귀포 5년의 이야기’는 지역을 꿰뚫는 흥미로운 전시이자, 시민들과 방문자들을 위한 일종의 공유회였다. 최근 방문한 전시장에서는 마을 라운지와 동네 책방 등 지난 5년간 서귀포에 조성된 151개 문화거점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었다. ‘봄꽃하영이서’ 등 서귀포 대표 축제의 정겨운 풍경을 만났고, 창의문화캠퍼스나 서귀포 기후예술 프로젝트 등 지역민들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문화도시 서귀포’의 현재를 일목요연한 인포그래픽과 사진 자료 등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인구 18만2000명 서귀포의 현재와 미래를 시민들과 공유하는 자리였습니다. 3년 연속 최우수 문화도시가 된 서귀포엔 지역 고유문화 매력이 있고, 또한 그것이 최고의 글로벌 자산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이광준 서귀포문화도시센터장은 서귀포 문화도시 사업 활동 5년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105개 마을로 이뤄진 서귀포는 정부의 문화도시 사업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105개 마을 각각의 고유성과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생태적·문화적 가치를 융합한 ‘생태+문화 재생’의 실현을 추구한다. 1차 법정문화도시 중 유일하게 3년 연속 ‘최우수 문화도시’로 선정됐는데, 최근 이윤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가 빅데이터를 활용해 진행한 ‘서귀포시 문화도시 성과 분석’에서도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다. 이는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5개월간 문화도시 프로그램 참여자, 거점 공간 방문자 등을 대상으로 문화향유·정주만족도·문화예술활동 범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서귀포 문화도시 사업이 지역민들의 문화 향유를 증진하고, 문화인력 양성과 도시브랜드 창출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시민들의 반응이 뜨겁다. 응답자의 78%가 지난 5년간 문화예술 관람기회가 확대됐다고 평가했고, 83%가 문화예술 향유를 통해 삶의 질이 향상됐다고 대답했다. 문화로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문화도시’의 취지라고 할 때 지표들은 더욱 긍정적이다. 1차 문화도시 사업 마지막 해인 올해 ‘귤꽃향기축제’ ‘서귀포 봄맞이 축제’ 등 대부분 사업에서 현지 및 외부 방문자가 크게 늘었다. 즉, 문화도시 사업으로 인해 생활 인구도 증가한 것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노지문화를 활용한 마을 축제인 하례귤꽃축제에 몰려든 인파. 서귀포문화도시센터 제공

하늘을 지붕과 벽으로 가리지 않은 땅인 ‘노지(露地)’와 자연환경이 빚은 오랜 지혜인 ‘노지(老智)’. 이 두 가지 뜻을 모두 품고 있는 서귀포의 ‘노지문화’는 105개 마을을 하나로 묶는 핵심어다. 한마디로, ‘노지(露地)를 통해 노지(老智)를 계승한다’는 것. 서귀포는 유·무형의 다양한 ‘노지문화’ 중 다음 세대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것은 ‘미래문화자산’으로 선정하고 있다. 전시 ‘이슬땅: 모두가 이슬이고 모두가 땅이다’가 열리고 있는 대포동 전경초소가 대표적. 1960년대 해안 경비를 담당했던 이곳은 2021년 업무 종료 후 미래문화자산으로 선정됐고, ‘노지문화답다’는 새 이름과 새 쓰임을 함께 얻었다.

문화도시 기틀 마련에 초점을 두었던 ‘문화도시 1.0’(2020∼2024)을 지나, 서귀포는 이제 ‘문화도시 2.0’(2025∼2029)을 향해 간다. 센터의 큰 그림은 105개 마을을 연결해온 축제와 문화 거점 등을 인근 제주시까지 확장하는 것. 이 센터장은 “서귀포 문화도시가 제주 전체 문화도시로 확장해 나가기를 바란다”면서 “국제문화교류, 글로벌 기후+미디어+예술축제, 제주로컬브랜드, 미래문화자산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발전의 기반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의지를 다졌다.

이미지 크게보기 청주 시민기록관에서 특별한 기억이 담긴 기증품을 둘러보는 관람객들. 청주문화도시센터 제공

◇‘기록문화 창의도시’…15분 문화생활권 청주 = “청주는 모든 사람들의 모든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어요.” 기초자치단체로는 최초이자 유일의 기록원을 책임지고 있는 이경란 청주기록원장은 지난 11월 26일 청주 흥덕구에 위치한 시민기록관에서 이렇게 말했다. 충북 청주시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제작하고 보유한 도시로서 문화적 정체성으로 ‘기록’을 앞세웠다. ‘기록문화 창의도시’. 제1차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돼 5년 만에 ‘15분 문화생활권’을 구축해낸 청주의 슬로건이다.

그 중심에는 ‘청주기록원’과 ‘시민기록관’이 있다. 청주기록원에서는 시의 모든 기록을 체계적으로 모으고 관리한다. 시민기록관에는 청주 사람들의 모든 기억을 담은 사진과 영상, 물건들로 빼곡하다. 21개 동네 기록관에서 작성한 기록물도 눈에 띈다. 각종 개발을 거치며 사라진 동네 골목의 단상들을 기록한 기록집과 청주 예술가들의 말을 담은 구술집 등은 작은 이야기까지 모두 기록하겠다는 시민들의 열망을 보여준다. 청주시는 도시의 70%를 15분 문화생활권으로 만들기 위해 총 157개의 문화도시 거점·연계 공간을 마련했다. 약 85만 청주 시민을 생각하면 인구 10만 명당 18개의 문화시설이 조성된 것으로 전국평균(6.6개)과 서울시(5개)를 한참 웃돈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해 개관한 청주 유네스코 국제기록센터 1층에 설치된 강익중 작가의 작품이다. 청주문화도시센터 제공

지난해 11월에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도 개관했다. 센터는 직지가 발견된 흥덕사 터에 위치한 청주 고인쇄 박물관 옆에 들어섰으며, 세계기록유산에 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이곳에도 시민들과 함께 꾸린 공간이 있다. 1층에 들어서자마자 청주 출신 현대미술가 강익중 작가가 시민들과 함께 제작한 아트월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시민들의 기억을 담은 가로세로 3㎝의 나무 조각들은 기록문화를 계승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가 되고 있다.

청주시는 2021년과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최우수 문화도시에 선정, 올해에는 최우수 도시 중에서도 ‘올해의 문화도시’로 뽑혔다. 법정문화도시 사업을 총괄하는 김미라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도시센터장은 “청주가 드디어 기록문화도시로서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다”며 “본격적인 국제 기록 협업으로 문화도시의 성과를 꽃피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