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30년간 ‘충무로 대장장이’로 살아온 조화성 감독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보는 ‘디렉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백동현 기자

■ K - 콘텐츠 ‘숨은 주역’… 대중문화예술 제작스태프대상 수상자 2人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 조화성 미술감독
“압구정 분장학원 다 사라져
전문 교육시설 확충 급선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이 있다면,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이들이 있다. 전자가 ‘스타’라면 후자는 ‘스태프’다. 하지만 이들 모두 한류 콘텐츠의 주역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는 ‘대중문화예술 제작스태프대상’은 바로 그 숨은 주역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자리다. 지난 21일 서울 마포구 스탠포드호텔 코리아에서 열린 시상식에서는 영화, 방송, 음악 분야에서 촬영, 조명, 특수효과, 편집, 의상, 무대, 음향 등의 업무를 맡고 있는 19명을 선정해 상장을 전달했다. 이 중 장관 표창을 받은 조화성 화성공작소 대표 겸 미술감독과 시각특수효과(VFX)의 대가인 이지윤 오아시스 스튜디오 대표를 이날 시상식 현장에서 만났다.

“‘누구’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지난 30년간 충무로의 미술을 책임져온 조화성 화성공작소 미술감독은 ‘좋은 미술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명쾌하게 답했다. 캐릭터와 이야기를 충분히 공부하고 이해하면 그에 걸맞은 미술을 조합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라에서 주는 상이라 기쁘고, ‘대중’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상이라 뜻깊다”고 운을 뗀 조 감독은 “제 업(業)은 대중을 상대로 한 종합영상산업 안에 존재한다. ‘미술은 좋더라’는 말은 결코 칭찬이 아니다. 좋은 작품 안에서 조화를 이룬 미술을 선보였다는 평가가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조 감독이 그동안 참여한 영화와 드라마는 수백 편이다. 최근에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비롯해 ‘이순신 시리즈’로 잘 알려진 ‘한산’과 ‘노량’ 등에 참여했다. 붕괴된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재난 상황을 담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진 후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로 뒤바뀐 아파트와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 군상이 효과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조 감독은 “이 작품은 재난 영화의 표피를 두르고 있지만, 결국 1960∼1970년대부터 지어지면서 ‘내 집 마련’이라는 꿈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소망이 응집된 아파트의 이야기”라면서 “내가 편히 있을 안락한 장소여야 하는데, 지진 이후에는 그 개인의 공간이 공용 공간이 되고 또한 서로가 서로에 대한 감시의 주체나 객체가 되는 상황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이 바라보는 현 한국의 미술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지나친 역할 세분화가 오히려 전문 인력의 탄생을 저해하는 것을 우려했다. “각 부분은 잘 아는 ‘스태프’는 될 수 있으나, 이를 총괄하는 ‘디렉터’로 성장하는 길은 오히려 좁아졌다”고 아쉬워했다. 결국 전문 인력을 꾸준히 양성하기 위해 조 감독은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서울 압구정동에 가면 분장 학원이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죄다 성형외과로 바뀌었죠. 이런 대중문화 속 미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과도 부족하고, 돈벌이를 앞세운 아카데미만 남아 있어요. 전문 교육 시설이 확충돼야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이 이탈하지 않죠. 관련 예산과 지원을 늘려야 업계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이미지 크게보기 요즘 AI 시장에 관심이 많다는 이지윤 대표는 “AI를 활용해 얼마나 더 창의적으로 만드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동현 기자

“뉴질랜드의 ‘웨타스튜디오’처럼 특수효과 분야 국가적 지원 필요”

이지윤 오아시스 스튜디오 대표
“세계시장의 파이는 크기 달라
시각특수효과 경쟁력 키워야”

“웨타스튜디오는 뉴질랜드가 키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지윤 오아시스 스튜디오 대표는 한국 시각특수효과(VFX)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민간 자본을 바탕으로 자생력을 키우며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는데, 여기서 또 한 차례 도약하기 위해서는 공적 자금 투입이 필요하다는 호소다.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VFX와 컴퓨터그래픽(CG)을 맡은 뉴질랜드 회사인 웨타스튜디오를 국가 차원으로 지원한 것이 좋은 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는 관객 1000만 명을 모으면 기뻐하지만, 글로벌 시장의 파이는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이 시장을 더 경쟁력 있게 키워야 한다”면서 “웨타가 적자를 감수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뉴질랜드 정부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차원 높은 기술력을 보유하게 되면 그것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된다”고 말했다.

이미지 크게보기 미이케 다카시 일본 감독이 연출한 디즈니+ ‘커넥트’.

이 대표는 32년간 한국 VFX와 CG 산업의 부흥을 이끈 산증인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원더풀 데이즈’(2003)를 비롯해 가상현실(VR), ‘리니지’와 같은 게임 실감 콘텐츠, CF 등 다양한 영역에 종사하며 영상 실험을 거듭했다. 최근에는 미이케 다카시 일본 감독이 연출한 디즈니+ ‘커넥트’,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그린 드라마 ‘힙하게’ 등에 참여했다.

요즘 이 대표는 인공지능(AI)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AI의 발전이 VFX나 CG 제작 분야에도 크고 작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만 이 대표는 ‘활용 수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AI를 활용한 콘텐츠끼리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AI와 인간이 만든 결과물의 차이를 구분하기 힘든 수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이세돌 이기려고 알파고를 만든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알파고가 인류 최강 바둑 기사인 이세돌을 이기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으나, 바둑을 잘 두는 것이 알파고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대표는 “‘AI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AI를 활용해 더 빠르게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더 창의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면서 “이런 무한 경쟁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