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석 성균관대 행정학과 및 국정전문대학원 교수

지난주 국정 브리핑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연금개혁 원칙을 제시했다. 당연하고 원론적인 개혁 방향이다. 정부도 조만간 개혁안을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만시지탄이나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현 정부는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해 연금개혁을 추진할 것을 공약했다. 그러나 공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는 국회 공적연금개혁특별위원회로 대체됐다. 사회적 합의 도출 필요성과 국민연금법 개정 입법 과정의 중요성 때문이라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이다.

연금개혁은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법률 제정 문제다. 전문가의 과학적 분석뿐만 아니라, 국민적 합의와 정치적 타협이 필요하다. 국회 특위 대신 대통령 주도로 다양한 전문가와 여야 정치인을 망라하는 대통령 직속 특위가 구성됐더라면 어땠을까? 연금개혁 실무를 담당하는 정부 부처 간의 협력을 도출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설득하며 정치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정부의 개혁안에는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진다. 개혁 원칙인 노후소득 보장과 지속가능성은 상호 모순적이며, 이념적으로도 찬반이 명확하게 나뉜다. 세대별 보험료 인상 속도 차등화나 자동 안정 장치 도입 등도 논란의 여지가 크다. 이처럼 정부 개혁안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은 불가피하다. 소득대체율 1%p 차이로 모수개혁이 무산된 경험을 생각해 볼 때, 여야 합의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련해 의료개혁은 반면교사가 될 수 있다. 개혁에 대한 공감대가 상당 수준 형성됐던 의대 정원 증원이었지만, 지나친 정부 주도 추진으로 거센 저항을 자초했다. 만일 정부가 공론화를 통해 투명하게 증원 규모를 결정했더라면, 또는 저항을 예상하고 적절한 대처 방안을 마련해 대응했더라면 양상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연금개혁은 달라야 한다. 그리고 다를 수밖에 없다. 법률 개정이 필요한 연금개혁은 의료개혁 같은 추진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부 주도로 이뤄진 개혁안 도출 과정은 의료개혁과 유사하다. 전문가와 국민, 여야 정치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공개적으로 개혁안이 도출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정부는 개혁안에 대한 반대와 저항을 예상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야당의 의견을 진솔하게 경청하며, 국민적·정치적 합의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야당도 당리당략을 떠나 ‘반대를 위한 반대’를 접고 연금개혁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역할이 중요하다. 저항이 따르게 마련인 개혁 과정에서, 재선이 지상 과제인 국회의원은 정치적 계산으로 개혁의 본질을 훼손하는 ‘쉬운 길’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 재선이 아니라 역사적 평가를 추구하는 대통령은 다르다. 정치적 유불리를 초월해 ‘어려운 길’을 선택할 수 있다.

개혁안을 제시하고, 국회로 공을 넘겨 국회 정상화와 여야 협치(協治)를 촉구하는 것은 오히려 쉬운 길이다. 투명하게 개혁안을 마련하고, 저항을 예상해 대책을 마련하고, 국민적·정치적 합의에 이르기 위해 반대 의견을 진솔하게 수렴하고, 협치를 통해 개혁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야말로 국익을 실현하기 위한 어려운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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