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진 국제부 차장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9년 영국에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논쟁이 한창이었다. 당시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 강행을 위해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하원에서 확실한 과반 의석을 차지해 브렉시트를 차질없이 강행하겠다는 노림수였다. 결과는 보수당의 압승(650석 중 365석)이었다. 1987년 이후 32년 만에 거둔 최대 승리였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1935년 이후 84년 만에 최악의 패배를 당했다.

보수당의 압승 원인으로는 2016년 6월 국민투표 시행 이후 3년 6개월여를 끌어온 브렉시트 논란에 지친 영국 국민이 몰표를 줬다는 분석이 외신을 중심으로 제기됐다. 하지만 유권자들이 노동당의 급진적 공약에 등을 돌린 것도 보수당 압승의 또 다른 이유라는 분석도 많았다. 당시 노동당 대표는 대표적 급진 좌파인 제러미 코빈 의원(현 무소속)이었다. 코빈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법인세·소득세 인상 및 기간산업 국유화, 대규모 무료 공공서비스 확대 등을 약속했다. 코빈 대표의 공약에 영국 경제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같은 급진 공약이 중도 성향의 유권자를 대거 이탈시켜 노동당을 굴욕적인 패배로 내몬 자충수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했던 노동당이 ‘우클릭’ 공약으로 지난달 4일 치러진 총선에서 14년 만에 정권을 되찾았다. 노동당의 압승(650석 중 412석)엔 당의 방향을 중도 실용노선으로 과감히 바꾼 키어 스타머 대표가 있었다. 스타머 대표는 노동당 당수로 있으면서 당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법인세·소득세 인상 및 기간산업 국유화 정책을 과감히 폐기했다. 또 경제 성장과 부의 창출, 흔들림 없는 국가 안보 등을 공약으로 내걸고 중도화 전략을 쓰면서 지지층을 넓혔다. 보수당 집권 아래 10년여간 계속된 경기침체와 고물가, 실업난에 시달린 유권자들은 환호했다. 총선에서 승리 후 총리로 취임한 그는 경제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역사상 가장 친성장·친기업 정부가 되겠다고까지 천명했다.

영국 총선 결과는 이념보다 경제와 민생이 선거 승패를 가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국내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우클릭’ 행보가 눈길을 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 전 대표는 민주당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왔던 종합부동산세에 대해 실거주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소액 투자자들을 위해 금융투자소득세 유예가 필요하다고 시사했다. 이 전 대표가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과 비교하면 선뜻 납득이 가지는 않지만, 진정성 여부를 떠나 중도층 표심을 잡기 위한 행보는 충분히 평가할 만하다. 다만, 당내에서 거센 반발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이 전 대표의 우클릭이 민주당 당론으로 자리 잡을지는 미지수다. 과거 제3의 길을 앞세워 1997년부터 2010년까지 노동당 장기집권을 이끈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2015년 당시 코빈 대표를 향해 이렇게 경고했다. “노동당이 과거의 낡은 증세와 복지 확대에만 매몰되면 유권자와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과거로 돌아가선 안 됩니다.” 블레어 전 총리의 조언에 지금 민주당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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