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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속전쟁’ 사회 - (下) 가족간 분쟁 막으려면

일반인도 유언장 작성 늘지만
형식 엄격해 법적보호 못받아
고령·질병 이유로 무효되기도

“유언장 공적보관제 도입 절실”

급증하고 있는 상속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법조계에서는 유언장 제도 활성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 최근 들어 유언장을 활용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법적으로 미비한 점이 많아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상속 분쟁과 함께 유언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도 매년 증가 추세다. 아직은 유언장이 사적으로 사용되는 만큼 전체 유언장 수나 유언 관련 소송 수는 집계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유언장을 작성하는 사례를 과거에 비해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이를 둘러싼 분쟁도 많아지고 있다는 게 법조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법무법인 한미 김철기 공증변호사는 “상속 분쟁이 증가하면서 유언장을 작성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면서도 “유언 공증을 받으면 상속 절차를 간소화할 순 있지만, 유족 간 분쟁 자체를 막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유언장을 둘러싼 분쟁이 증가하는 데는 유언장의 법적 요건이 까다로운 게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우리 민법은 유언장 종류를 △자필증서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구수증서 등 총 5가지로 한정하고 있다. 유언장 작성 시 △유언 취지 △본인의 성명 △유언 날짜 등을 명시해 ‘엄격한 형식성’을 갖춰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마저도 유언이 작성된 시점의 상황상 적합하지 않은 경우 법적 효력을 잃게 된다. 일례로 지난 2019년 사망한 A 씨는 유언장을 작성하던 2014년 당시 나이가 93세로 고령이라는 점이 문제가 됐다. A 씨의 재산을 놓고 외손녀 B 씨는 유언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해당 소송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이진웅)는 “A 씨가 자필로 작성한 유언장이 모든 요건을 갖췄다”면서도 “작성 당시 고령이었던 점과 유언장 작성 4개월 후 치매 진단을 받은 점 등을 고려했다”며 유언 무효라고 판결했다.

유언장 효력을 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이 지난 21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본회의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김상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9월 발의한 ‘유언증서 보관 등에 관한 법률’은 가정법원 또는 지방법원에 유언보관소를 두고 유언의 위조와 변조, 분실과 훼손을 방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했다. 법무법인 부천종합법률사무소의 이양원 변호사는 “누구나 간편하게 유언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유언장의 공적 보관제도 도입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상속을 둘러싼 분쟁이 늘면서 법 대신 금융권 신탁을 활용해 자신의 재산을 유족들에게 배분하도록 한 ‘유언대용신탁’도 증가 추세다.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3조3000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2020년 말 8800억 원 규모였지만 2021년 말 1조3400억 원, 2022년 말 2조500억 원, 2023년 말 3조1100억 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법조계에선 자산 처분을 온전히 유족에게 맡기기보다는 전문적인 자산관리인이 고인의 바람대로 자산을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을 유언대용신탁의 장점으로 꼽는다. 법무법인 세종 박기범 변호사는 “가령 미성년자인 손녀·손자가 성인이 된 후에 건물을 인도하거나 자녀에게 자산 처분을 바로 맡기기 부담스러운 경우 등에 유언대용신탁이 유언장보다 구체적인 자산 처분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정선형·이현웅 기자